[코리아프레스 = 조희선 기자]미국 워싱턴D.C.에서 느닷없이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론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북한이 핵무장 능력을 갈수록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대북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공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비확산계의 '대부'로 통하는 헨리 소콜스키 비확산교육센터 소장은 30일(현지시간) 미국 헤리티지재단에서 자신의 신간인 '과소평가: 그리 평화롭지 않은 우리의 핵 미래'를 소개했다.
 
이 자리에서 소콜스키 소장은 "1990년대 초반 미국이 한국의 전술핵무기를 철수할 당시 펜타곤에서 근무했다"며 "당시에는 굳이 한반도에 핵무기를 들여놓지 않더라도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콜스키 소장은 "지금은 한국 국민은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선호하고 있다"며 "최근 한국을 방문해 청와대 등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보니 전술핵 재배치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핵무기를 한반도에 전진 배치해야 한다는 미국 내 일부의 주장이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전술핵 배치에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국으로서는 모든 종류의 가능한 공격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해야 하는 만큼 최대한의 절제심을 갖고 (전술핵 배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소콜스키 소장은 "전술핵무기가 군사 목표물을 겨냥한다고는 하지만 민간인 희생자를 대량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국에 핵무기를 재배치하면 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데 미국은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강경한 비확산론자로 꼽히는 소콜스키가 뜬금없이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거론한데에는 북한의 핵무장 능력 강화에 따라 동맹인 일본과 한국이 핵무장에 나설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있다.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한 시나리오이지만, 일본과 한국까지 핵무기 개발에 나선다면 비확산의 '둑'이 무너지면서 아시아 전체는 물론 21세기의 화약고인 중동으로까지 '핵 도미노'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는 미국 비확산론자들의 우려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소콜스키 소장으로서는 원칙적으로 전술핵 배치에 반대하지만 역내 핵확산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북한의 핵무장을 확실히 억지하는 게 시급하고, 그러려면 전술핵 배치도 그같은 억지수단의 하나로 검토될 수 있다는 뜻을 내보인 것이다.
 
소콜스키 소장이 청중들에게 소개한 신간의 핵심대목 중 하나도 바로 일본과 한국이 핵무장이 나서는 시나리오다.
 
소콜스키 소장은 신간에서 "대부분 전문가들이 설마 일본과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겠느냐고 주장하고 있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다르다"며 "1970년대 한국이 미국의 안보공약을 처음 의심했을 때 한국은 핵무기를 가지려고 했고, 그런 의심은 북한이 핵·비핵 전력을 증강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콜스키 소장은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9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주변국들에 독자적 핵무장의 명분을 제공해 핵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발언한 대목을 거론했다.
 
그는 "이것은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에 대해서도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한다면 일본과 한국도 자체적인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명백한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콜스키 소장은 지난 4월 27일 워싱턴D.C.에서 주최한 비공개 토론회에서는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이 한국의 핵무장 시나리오를 담은 보고서를 회람시켜 파장이 일기도 했다.
 
소콜스키의 이날 전술핵 재배치 언급은 최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클라크 머독 선임 연구원이 한반도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내놓은 것과 맞물려 더욱 주목된다.
   
머독 연구원은 북한의 핵개발을 억지하고 주요 우방국에 실효성 있는 핵우산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 등에 전술핵과 같은 차별화된 핵전력을 전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전술핵무기의 전진 배치는 북한에 '핵으로 도발하면 즉각 대응한다'는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 같은 주장에는 북한의 핵무장 능력 강화와 미국의 대북 억지력 약화에 따라 한국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깔려있다.
 
머독 연구원은 "2025년 이후 미국의 안보공약이 적들과 동맹들에게 어느 정도 신뢰를 얻을지 모르겠다"며 "북한이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하고 미국이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를 하지 않겠다'고 한 이후 (2013년 아산정책연구원 여론조사 결과) 66%의 한국 국민이 한국의 핵무기 획득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전술핵 재배치론이 미국 워싱턴 주류 내에서 크게 공명을 얻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그야말로 비주류적 시각의 하나이며 미국 행정부 나 정책결정에 영향을 주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얘기"라며 "다만 북한의 핵능력이 커지면서 미래의 안보환경이 불확실해지고 있다는 인식은 분명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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