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개봉한 영화 변호인이 누적관객 800만명을 넘어서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 영화는 1981년 일어난 속칭 ‘부림사건(釜林事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터넷 백과사전에 부림사건을 검색하면 ‘1981년 군사독재 정권이 집권 초기에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일으킨 부산 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容共)조작 사건’이라고 나온다. 다른 백과사전의 내용도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백과사전에는 이 사건의 변론은 부산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김광일, 문재인 등이 무료로 변론을 맡았으며, 노무현은 이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상당 부분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김광일, 문재인 등은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경우 자신의 수기(手記)에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고 밝혔다. 그는 수기에서 피의자들은 부림사건 와중에도 노동착취 등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으며, 그들에게 감명받아 그들의 관심사에 차츰 눈을 뜨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부림사건은 노 대통령을 좌경 의식화(意識化) 시켰으며, 이후 그가 정치의 길로 들어는 분기점이 되었기 때문에 친노(親盧) 세력에게 중요하고 의미있는 사건이다.
부림사건은 부산지방검찰청의 공안(公安) 검사 3명이 수사를 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이 고영주(高永宙ㆍ65ㆍ법무법인 케이씨엘 대표변호사) 변호사다.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명백한 의식화 교육 사건”
지난 1월 7일 종로구의 케이씨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고 변호사는 최근 영화 변호인을 통해 부각된 ‘부림사건’의 경우도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명백한 의식화 교육 사건”이라고 잘라 말했다.
현재 부림사건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여전히 유죄(有罪)로 남아 있는 사건이다. 2009년 부산지법 형사 항소 3부는 이 사건의 재심판결에서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사건의 핵심인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판단을 유지한 것이다. 지난 1월 9일 부산지법에서 또다시 재심 공판이 열렸고, 현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고영주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진상규명위와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에서 진짜 간첩행위를 한 사람들도 민주화 인사로 만든 판에 그들 주장대로 부림사건이 정말 고문으로 조작된 용공사건이었다면 재심에서 어떻게 유죄가 유지됐겠느냐”고 반문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수기에서 피의자들이 변호인인 자신을 의식화시키려고 상당한 노력을 했고, 결국 자신도 그들 때문에 점점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의식화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검사와 변호사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전파하려고 했던 사람들인데, 이것이 고문을 받고 겁에 질린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겠습니까 너무나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도저히 고문을 받았거나, 강압적 경찰 조사에 주눅이 든 피의자라고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림사건 인맥들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나 기타 요직에 많이 진출했습니까
“이호철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들어갔고, 당시에 문재인씨도 부림사건 변호를 맡았다는 이야기가 상식처럼 회자되었습니다. 청와대나 정부 요직 중에서 부산인맥이라 불리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부림사건 인맥들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과거 국보법 위반으로 나에게 수사를 받았던 세력들에게 보복을 당한 셈이죠. 좌천 인사를 당하면서 ‘저들이 말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저들에게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하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과거 간첩이나 공안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사례가 많은데요.
“재판부가 공안사건 수사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간첩 사건의 경우 피의자를 검거하면 바로 조사하고 재판에 넘겨서 처벌하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검거된 간첩을 통해 조직의 전모를 알아내거나, 다른 간첩망을 적발해 내는 것이 우선이고, 이들을 포섭해서 북한의 대남 전술을 교란시키는 등 다양하게 활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첩사건의 경우 사법처리에 착수하기 전에 장시간 데리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측으로 전향한 간첩이 북한에 접선 메시지를 보내 남파시킨 간첩을 생포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공작에도 불구하고, 전향을 거부함으로써 처벌을 받았던 간첩들이 재심을 신청할 경우 법원은 이와같이 역공작 과정에서 장기간 데리고 있었던 기간을 모두 불법구금이라고 판단하고, 이들의 진술을 장기간 불법구금으로 인한 위법수집된 증거라며 증거능력을 전부 부정한 다음,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에서 대학생(국밥집 아들)이 체포당해서 끌려간 곳이 여관(혹은 민가를 개조한 곳)이고, 이곳에서 감금된 채 한 달간 고문을 당한 것으로 나오는데요. 당시에 피의자를 외부에서 수사하는 관행이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그야말로 왜곡 조작이죠. 또 한 달간 피의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면 경찰이나 검찰청에 신고가 들어왔을 텐데 당시에 전혀 그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들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도리어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의견을 밝혔던 사람들입니다. 저한테 조사받을 때에는 고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고문 이야기는 나중에 재판받을 때 거론된 것입니다.
공안검찰의 경우 정치사범이나 공안사범을 잘못 건드리면 그야말로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소위 ‘칙사대접’해가면서 조사합니다. 그들이 정말로 경찰에서 그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했다면 그들이 하지 않았던 사실이 진술서에 나왔어야죠. 그런데 그들이 하지 않거나 없었던 이야기가 진술된 것은 전혀 없었거든요.”
검찰이 아니라, 피의자들이 방청객을 동원했다
-영화에서 가족과 일반 방청객이 법정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대신 검찰이 동원한 방청객이 방청석을 점령하여 변호하는 변호사에게 야유를 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하. 할 말이 없습니다. 실상은 정확하게 그 반대입니다. 공안사건을 십수년간 맡아봤지만, 공판 때는 항상 피의자 쪽 사람들로 꽉꽉 찼습니다. 검찰이 도대체 누구를 동원해서 방청객을 채웁니까. 막말로 공안검사는 법정에 들어가는 게 끔찍할 정도로, 법정은 언제나 저쪽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고문을 한 경찰이 증인으로 나와 변호인에게 큰소리를 치고, 욕을 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판단은 내가 아니라 국가가 한다’고 큰소리를 치더군요.
“법정에 판사도 있고, 검사도 있고, 방청객이 있는데 경찰이 소리를 쳐요 판사가 그 장면을 보면, 저 경찰이 진짜 고문을 했다고 판단하거나, 미쳤다고 하겠죠. 그리고 법률 위반은 판사가 법에 따라 판단을 하는 것이지 어떻게 국가가 한다는 것이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재판을 어떻게 하는지 한 번도 안보고 시나리오를 썼나….”
-영화를 보면, 재판 초반에 판사가 검찰과 변호인 측을 만나서 형량을 합의하라고 권유하고, 재판 후반부에는 변호인들이 판사가 가석방을 해주는 조건으로 형량을 받아들였다는 등의 대화가 나옵니다.
“가석방은 판사가 하는 게 아니에요. 수감도중 행형 성적이 우수하면 교도소에서 법무부에 품신하는 것이지 판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죠. 법원과 경찰, 검사가 짜고 재판을 진행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네요. 그럴듯한 이야기를 해야죠.”
“노무현 대통령 시절 부림사건이 사건이 친노들의 정통성을 빛내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해서 과거사진상위원회 등을 통해 무죄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을 감지하고 제가 당시 김승규 법무부 장관한테 말했습니다. ‘부림사건은 명백한 공산주의 운동이다. 부림사건을 과거사진상규명 대상 사건으로 하면 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변호한 것이 밝혀지게 되므로 대통령에게 크게 누가 될 것이다.’ 그랬더니 김 장관이 그 말을 노 대통령에게 전했나 봐요. 그래서 노 대통령 시절 이 문제를 더는 공론화하지 못한 겁니다.
아마 문재인 의원도 내가 이 사건이 공산주의 운동이라고 하니까 이제 와서 변호를 하지 않았다고 한 발 빼는 것 같은데 속 내막은 잘 모르죠….”
-왜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보시나요.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고, 친노 세력의 결집을 위한 목적이겠죠. 그런데 미국 같은 경우 아무리 비리를 저지른 경찰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더라도 나중에는 올바른 경찰이 이를 바로 잡는 등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식의 영화는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완전히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화를 만듭니다. 정말 악랄하죠.”
사법부의 좌경화도 심각한 문제
고영주 변호사는 우리나라 사법부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사법부 정상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판사의 꿈이 대법관이 되는 것인데 노무현 정부 때 공안사범에 대해 무죄를 내리지 않거나, 영장을 기각하지 않으면 대법관 자격이 없는 것처럼 인사를 했고, 그런 잘못된 관행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판결을 좌편향적으로 하는 판사라야 대법관에 임용될 수 있는 것처럼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법부의 좌편향이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대학가와 전교조의 의식화 교육이 20~30년이 넘게 진행되어 왔고, 특히 전교조의 영향을 받은 학생 중에 고시에 합격해서 지금 부장급 판사가 된 사람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좌경화 문제가 일부 젊은 판사들의 문제였는데, 점점 가면서 전 사법부로 문제가 번지고 있습니다. 최근 지방법원 부장급 판사들이 통합진보당과 전교조의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는 등 법과 상식에 벗어난 황당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걱정입니다.”
고 변호사는 2002년경 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 시절 사법시험 3차 면접시험 당시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3차 시험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건전한 상식에 어긋나는 언행을 해서 도저히 법조인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걸러내는 것인데, 1,000명 중 1~2명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을 합니다.
저는 첫번째 수험생에게 ‘한반도의 정통성이 어디에 있다고 보냐’고 물었습니다. 국가관을 물어본 거죠. 저는 당연히 ‘한반도의 정통성은 우리 대한민국에 있습니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 친구가 뜬금없이 ‘외형상은 남한에 정통성이 있다고 되어 있지만, 건국 세력이 친일파이기 때문에 남북한 어디쪽에 정통성이 있는지는 좀 생각해 봐야겠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지만, 3차에서 떨어지면 너무 아깝기 때문에 기회를 한 번 더 주기 위해 다음 질문으로 ‘주한미군 철수주장’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 하는 말이 ‘당연히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당연히 나가야 되느냐’하니, 자기들 멋대로 들어왔으니 당연히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이 남침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해봤느냐’고 물으니, ‘왜 남침을 합니까 남과 북이 사이좋게 지내야죠’라고 하는 겁니다. 골수 운동권 학생이 그런 대답을 하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평범한 학생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와서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를 반드시 떨어 뜨려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면접을 본 10명 중의 8명이 그런 식의 대답을 해서 떨어뜨리지 못하고, 그날 밤에는 ‘이 일을 어떻게 하나’ 하며 끙끙 앓은 적이 있습니다.”
올해 8월 함경북도 나선 특별시에서 홍수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수해 발생할 당시 일부 북한 주민이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가슴에 품고 익사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3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10월 말 수해로 실종된 시신 수색 작업 과정에서 발견된 한 여성이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품에 안고 있었다”면서 “이 여성 외에도 비닐로 꽁꽁 싸맨 초상화를 갖고 죽은 주민 시신이 다수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어 소식통은 “이후 최초 발견된 이 여성 시신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 여성의 아이를 품고 익사한 할머니가 발견됐다”면서 “생사를 오가는 절박한 상황에서 아이보다 초상화를 선택한 것에 대해 주변 주민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소식통은 “일반적으로 당국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령의 권위를 목숨으로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충성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특히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를 신성시하고 화재나 수해 등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지켜야 한다고 교육시키고, 이를 어길시 인민의 의무를 저버린 것으로 간주해 처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 정신, 육탄 정신이 체질화 되게 하는 것 ......... ]
[北 교육강령 단독 입수] ① 교육목표, '김정은 총폭탄 육성'
[ 2016-05-27 ]
<편집자주> 뉴시스는 최근 북한의 교육 목표와 이념을 규정한 '12년제 의무교육 강령'을 입수했다. 뉴시스가 입수한 북한의 교육강령은 우리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소학교'와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고급중학교' 용으로 해당 학교의 전 학년, 전 과목 교과서 제작의 기본 원칙이 될 뿐 아니라 교사들의 수업 운영 지침서로 사용된다. 북한 교육강령의 전반적 내용이 한국 언론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후 유치원(1년)-소학교(5년)-초급중학교(3년)-고급중학교(3년)의 12년 의무교육 체계를 새롭게 갖추기 시작했고, 이에 맞추어 각급 학교에 적용할 교육강령을 제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뉴시스가 이번에 공개하는 교육강령에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 교육의 목표와 실천방향 등이 생생하게 담겨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뉴시스는 북한 교육강령의 핵심 내용과 이를 다각도로 분석한 기사를 특집으로 게재한다.
① 12년제 의무교육의 목표는
북한 학교는 "김정은 총폭탄 양성소"
'김정은 어린시절'과 '혁명역사'도 교과목에 정식 편입
【서울=뉴시스】 김인구 북한전문기자 = 북한이 2014년부터 시작해 올해 들어 완전하게 시행하고 있는 '12년제 의무교육'의 목표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을 육성하는 것임이 확인됐다. 뉴시스가 입수한 북한의 소학교(우리의 초등학교에 해당)와 고급중학교(고등학교)의 '제1차 12년제 의무교육강령'에 명확히 제시돼있다.
이들 교육강령은 교육목표에 대해 "백두산절세위인들(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 이론의 위대성, 영도의 위대성, 풍모의 위대성에 대한 원리적인 인식과 인간적인 매혹에 기초하여 투철한 혁명적 수령관을 지니고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제일 생명으로 간직하며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 정신, 육탄 정신이 체질화 되게 하는 것"(6쪽)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내용은 소학교와 고급중학교 교육강령에 똑같이 명시돼있다. 두 강령은 앞부분에 12년제 의무교육에 대해 똑같은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 내용은 우리 당국이 최근 입수한 초급중학교(우리의 중학교에 해당)의 '교육강령'에도 수록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교육강령들을 보면, 북한의 교육은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12년간의 의무교육이 철저하게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에 대해 절대 충성하도록 세뇌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12년제 의무교육의 사명에 대해서는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이 자기의 사명을 다해야 고등교육의 질적 수준과 사회의 전반적인 사상, 기술, 문화수준을 높이며(중략) 김일성민족, 김정일조선을 사회주의 문명국으로 빛내일 수 있다"(6쪽)라고 명시했다. '김일성 민족'이나 '김정일 조선' 등의 용어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 언론계, 출판계, 문화계, 법조계, ..... 사회 곳곳에 지지 그룹을 가진 가장 강력한 집단 ........
.....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집단 ......... ]
한국을 反美 기지로 만든 전대협
[이동호의 시대추적] 전향한 운동권 핵심인사의 참회록①
미래한국 2015.08.27
1980년대 학생운동의 주역 전대협과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NLPDR)
전대협 출신들이 정치권의 중심 차지하면서 한미동맹 급속 악화, 反美, 북한 지도자와 북한 核 두둔, 한국 현대사 왜곡…
이 글은 한때 잘못된 사상과 인식 위에서 자랑스러운 우리 현대사를 흠집 내고자 했고, 잘못된 길로 가자고 주장했던 저에 대한 고백입니다. 과거의 학생운동 경력이 더 이상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우리 사회에 대한 부끄러운 기록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는 우리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 지도부에 그들의 이름을 내걸고 있다. 새민련 지도부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 당료, 실무자, 보좌관 등 새민련 곳곳에서 학생운동권 출신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학생운동 지도부가 대한민국 야당의 중심부를 장악하고 한국 정치의 중심으로 진출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제 변방의 소수가 아니다. 언론계, 출판계, 문화계, 법조계, 여성계, 시민운동 단체, 노동운동계, 농민운동계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지지 그룹을 가진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 성장했다.
전대협 출신의 학생운동 그룹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라고 평가해도 과장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이 과연 어떤 사상과 관점을 지니고 있는가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행로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문제다.
전대협 출신들의 정치적 지향점과 특징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들이 활약한 소위 진보정권 시대서부터 한미동맹은 급격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 남북 분단의 원인을 미국이 제공했다는 터무니없는 날조된 망발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오늘날 남북한 간의 갈등의 배경이 미국의 강경정책 탓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수가 과거에 비해 급증했다. 만연된 반미(反美)감정은 우리 국력이 성장한 만큼 우리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인식하기에는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반면에 북한 정권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론이 주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 핵에 대해 두둔하기까지 했다. 노무현 정부 이후 현재까지 전대협 출신이 북한 핵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발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전대협 세대의 특징은 북한에 대해서는 기이할 정도로 관대하다. 국제사회가 그 심각성을 공감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의 인권문제에 어느 누구하나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촉구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북한 인권문제는 북한 내부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반면에 미국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적대적이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가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오욕과 굴절로 얼룩진 수치의 역사라는 좌파들의 주장에 이르러서는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이들의 이런 관점과 태도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들의 현실 인식은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된 좌파적 사회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고, 30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도 그 근본이 바뀌지 않은 채 곳곳에서 집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해 권위주의적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이며, 사회가 선진화를 위해 치르는 대가 정도로 생각하여 관대하게 바라봤다. 좌파적 사회운동에 대한 주류사회와 지식인 사회의 안이하고 무사 안일한 대응으로 인해 이들은 우리 국민들의 인식의 혼란을 효과적으로 이뤄 냈다.
다수 국민들은 좌파적 사회운동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잘 깨닫고 있지 못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핵심에는 아직도 1980년대식 좌파적 사고에 절어 있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된 세력의 편향된 인식에 그 원인이 있다.
이날 집회 그 어디서도, 지난달 14일 벌어진 ‘광화문 폭동’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어디서도 광화문 폭동으로 부상당한 113명의 의경 및 경찰관들에 대한 위로나 격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평화의 목도리를 두르고 나타난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수십 명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정의당 의원들도, 광분한 폭도들의 폭력으로 부상당한 의경들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들은 폭력시위를 벌이다가 부상당한 농민 한명의 쾌유만을 기원했다.
물리적 폭력은 사라졌지만,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공권력을 조롱하는 속칭 진보의 못된 구태는 이날도 재현됐다.
속칭 진보의 동떨어진 현실인식은 대형 스크린에 등장한 한상균 위원장의 ‘설교’에 그대로 묻어났다.
이날 한상균 위원장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11월 14일 우리 민중들의 투쟁은 너무나 정당했다”고 운을 뗐다. 광화문 폭동의 잔혹성을 폭로한 동영상과 사진을 접한 60% 이상의 국민들이, 당시 시위를 비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상균 위원장은 이런 국민의 뜻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러면서 한상균 위원장은 “오늘 우리가 잠깐의 탄압을 받을지언정, 폭력적 독재정권이 결코 우리의 투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며, 군중을 선동했다.
이어 한상균 위원장은 “제가 있는 곳이 조계사든 감옥이든 투쟁 현장이든, 이 시대가 저에게 부여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밝힌다”고 했다.
특히 한상균 위원장은 "오늘 2차 민중총궐기가 더 큰 민중의 항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으로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 위원장은 현실을 철저하게 왜곡했다.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의 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67만여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3% 수준이다. 더구나 민주노총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금속노조, 건설노조 등은 대부분 대기업 근로자들로 구성돼 있다. 민주노총 강경투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전교조는 소속 회원 모두가 교사 신분이다.
결국 민주노총의 핵심 구성원들은, 이른바 ‘귀족노조’와 정년이 보장된 교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해 연봉이 5~6천만원 이상인 이들이, ‘비정규직’과 ‘노동자의 삶’을 말하는 것은 언어의 유희나 다름이 없다.
[ ......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가 신 교수의 저서 '더불어숲'에서 기인 .......
문재인 .... 선생님이 제게 써주신 '처음처럼'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써주신 '우공이산'은 저의 정신이 되고 마음가짐이 됐다. ........
박영선 .... 성공회대의 더불어숲 강의에 다녔던 나에게 신영복 선생님은 .... 서예를 권하며 붓 잡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 ]
[ ......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제가 대북송금특검으로 구속됐을 때 읽고 또 읽었다 ....... ]
野 '故신영복의 추억' 당명, '더불어숲' 되라는 고인 선물
뉴미디어뉴스국
2016-01-16
문재인 '처음처럼', 저의 정신이 돼…소주한잔 올린다
안철수 오늘 조문 예정
야권 인사들은 16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로 유명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별세 소식에 저마다 고인의 삶을 떠올리며 한목소리로 애도했다.
특히 최근 개정한 당명인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가 신 교수의 저서 '더불어숲'에서 기인한 표현이었던 사실이 뒤늦게 회자되면서 신 교수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 교수는 생전에 적지 않은 야권 인사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 묘비문인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글귀도 신 교수의 '작품'이다.
더민주 문재인 대표는 페이스북 글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대선패배에 누구보다 아파하시고, 다 함께 정권교체 꼭 해내자고 격려해주셨던 분이라며 선생님이 제게 써주신 '처음처럼'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써주신 '우공이산'은 저의 정신이 되고 마음가짐이 됐다. 선생님께 소주 한잔 올린다고 추모했다.
문 대표는 지난 대선 이후 신 교수와 가끔 만나 조언을 구한 사이로, 17일 서울 성공회대에 마련된 빈소를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홍보전문가 출신의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2006년 소주브랜드 '처음처럼'을 만들 때 고인의 서체를 활용해 그의 글씨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장본인이다. 손 위원장은 1990년대 말 강연 모임이던 '더불어 숲'에서 고인과 첫 인연을 맺은 뒤 직접 서예를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손 위원장은 저는 그 분의 서체를 정말 좋아했다며 고인에게 요청을 드려 시서화를 받았고, 그 글씨 중 '처음처럼'을 브랜드로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선생님의 가르침이 더욱 필요한데…이렇게 황망하게 떠나시니 마음이 미어집니다라고 썼다.
손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에도 고인의 흔적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더불어민주당' 당명 응모자가 제안 설명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글처럼 힘든길, 산길을 가도, 더불어 가면 길이 생긴다는 것이라며 신 교수의 '더불어숲'에서 '더불어'를 따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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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도 고인을 추모하는 야권 인사들의 애도글이 이어졌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제가 대북송금특검으로 구속됐을 때 읽고 또 읽었다고 했고, 이석현 국회 부의장은 시대의 양심적인 지식인, 영면하소서라고 글을 남겼다.
분당 국면에서 거취를 놓고 막판 고심 중인 박영선 전 원내대표는 트위터글을 에서 성공회대의 더불어숲 강의에 다녔던 나에게 신영복 선생님은 '얼마나 힘들어요' 하시면서 서예를 권하며 붓 잡는 법을 가르쳐주셨다며 먹을 가는 단아한 마음, 금처럼 제련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라고 고인을 떠올렸다.
강선아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고인의 삶은 슬프고 비극적 우리 현대사의 굴곡 그 자체였다며 그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던진 가르침, 굽힐 줄 모르던 의지는 세상을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시켰다. 고인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정의당 노회찬 전 대표는 선생님의 뜻과 정신은 낡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진보의 미래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삶과 글과 강의와 글씨로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일깨움을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생의 창조적 열정이 고조에 달하는 나이 27세부터 47세까지 20여 년을 어두운 감옥에서 보내셨으면서도 단 한 번도 당신이 받은 고통에 대하여 불평을 말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살을 찌르는 아픔을 견디고 마침내 영롱한 구슬을 만들어 내는 진주조개처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세상에 내보이셨습니다.
선생님이 『더불어 숲』 『나무야 나무야』에서 『마지막 강의』까지 인간의 본분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무문관(無門關)의 수도사만이 전할 수 있는 인생교본이었습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명문이란 “가득 담았지만 뺄 것이 없고, 축약했지만 빠진 것이 없는 글”이라 했는데 선생님의 글이야말로 그러했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책을 정말로 아껴가며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씨로 말하자면 한국서예사에 홀연히 나타난 금자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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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중국인들이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는 루쉰(魯迅)의 전기를 번역하신 적이 있으시지요. 선생님이야 말로 우리나라의 루쉰이십니다.
고단한 삶이 이어지는 힘들고 강퍅한 세상을 살면서도 선생님 같은 분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선생님처럼 결이 고운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모든 것을 과거형으로 돌리자니 너무도 허전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남기신 말씀과 글씨들은 저 하늘의 북극성처럼 언제나 우리 머리 위에서 밝은 빛을 발할 겁니다.
“선생님! 편히 가십시오. 선생님과 한 생을 같이 살았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합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19427345
2016.1.18 조선일보 우태영
고(故) 신영복 교수 문상을 가서 떠오른 생각들
글 | 우태영 조선뉴스프레스 인터넷뉴스부장
1월16일 저녁 때 별세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문상을 갔다. 성공회대에 차려진 빈소 영전에 국화꽃 한송이를 올렸다. 부인과 아들이 문상객에게 인사를 했다. 신 선생이 20년 징역살이를 하고 출옥한 다음에 결혼해서 얻은 아들이 잘 자란 모습이 신 선생을 위해서는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신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9월이었다. 당시 주간조선에 인터뷰 기사를 쓸 목적이었다.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20년 간 징역살이를 하다 그해 8월 14일 가석방으로 풀려난 그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조선일보사가 주관하는 '2015 만해대상' 수상자로 아베 일본 총리의 역사 왜곡에 항의하는 세계 역사학자들의 성명을 주도한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만해평화대상)를 비롯해 청전 스님과 무지개공동회(이상 만해실천대상), 황병기 가야금 명인, 정현종 시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이상 만해문예대상)가 선정됐습니다. 만해대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강천석 조선일보 논설고문)는 최근 이같이 결정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민족운동가이자 시인, 종교인, 사상가로 활동한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 선생의 삶과 사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만해대상은 평화, 실천, 문예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시상합니다. 부문별 상금은 1억원입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5일 별세했다. 존재 그 자체로 희망이 되고 버팀목이 되는 우리 시대의 또 한 어른이 세상을 떠났다. 허전하지만 또한 감사하다. 삼가 영전에 고개 숙인다.
선생의 삶은 선생을 단련시켰고, 보석 같은 결과물을 세상에 선물했다. 선생은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의 야욕을 현실화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 뒤를 이은 신군부가 강압 통치 끝에 민주항쟁 앞에 물러설 때까지 꼬박 2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 기나긴 고통과 억압의 생활을 그는 희망으로 승화시켰다. 분노와 좌절로 가라앉을 수 있었던 하루하루를 성찰과 공부, 깨달음으로 채워 마침내 새 출발의 ‘작은 등불’을 그려냈다.
선생의 가르침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에겐 사랑이든 생활이든, 또한 실천이나 인식이든 ‘관계’ 없이는 있을 수 없고 바로 설 수도 없다. 누구도 고립된 불변의 존재일 수 없으며, 수많은 관계 속에서 스스로 변화하고 주변을 변화시켜 결국 세상을 바꾼다. 깨달음과 공부도 궁극에는 세상을 바꾸는 데 목적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처음처럼’의 결연한 자세로, “한 알의 외로운 석과(씨과일)가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으로 나아가는 가슴 벅찬 그림”을 그렸다.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내는 변화는 씨과일처럼 소중하게 “사람을 키우는 일”에서 시작되고, 나무가 아닌 숲처럼 함께 더불어 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를 절망케 하는” 이 시대에 “통절한 깨달음”과 “새 출발의 디딤돌”로 삼아야 하는 말이다. 귀한 등불을 켜두고 떠난 선생의 안식을 기원한다.
그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말씀을 자주 했다. “씨과실은 먹지 않습니다. 새로운 시작이고 희망입니다.” ‘석과불식’은 <주역>의 ‘박괘’(剝卦)에 나오는 말이다. ‘박괘’는 소인배들이 득세하여 군자들을 깎고 또 깎아내는 상황이지만, 마지막 장에 ‘석과불식’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남아 있다. 소인배가 비록 득세하더라도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 거기에 우리 시대의 희망이 있다는 말씀이다. 씨과실이 땅에 떨어져 썩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고 희망이다.
돌이켜보니 선생님이야말로 석과불식의 씨과실이셨다. 하필이면 한파 속에 선생님은 먼 길을 떠나셨지만, 소중한 씨과실을 남기고 가셨다. 그는 “작가는 죽지만, 독자는 늘 새롭게 탄생한다”고 했다. 신영복이 없는 시대, 우리는 그가 남긴 아포리즘과 대화하며 씨과실의 싹을 틔울 것이다. “함께 비를 맞으면서” “더불어 숲”을 이루도록.
“오늘날의 주류 담론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 논리는 한마디로 거대 축적 자본의 사활적 공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전개 과정이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자본축적 과정의 전형적 형태입니다.”(신영복, <강의>)
동양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시서화에 능한 인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신영복은 본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규명하는 정치경제학자였다. 그는 대학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자본주의 분석에 있어서 가장 체계적인 이론으로, 가장 정합적인 실천과학’으로 받아들이며 정치경제학을 자기 학문의 밑절미로 삼은 ‘붉은 경제학도’였다.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1988년 가석방될 때까지 그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동양고전이라는 숫돌에 자신의 칼이었던 정치경제학을 벼리고 또 벼렸다. 곁에 두고두고 읽던 노자의 <도덕경>은 사회주의자의 이념적 경직성을 돌아볼 계기를 마련했고, 밑바닥 인생들과 뒹굴며 깨친 노동의 덕목은 ‘흰 손’을 가진 인텔리의 관념적 급진성을 성찰하게 했다. 그 서늘한 각성의 정수를 모아놓은 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사색>)이었다. <사색>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그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혁명적 인간의 글모음”이었다. “이 사실을 놓치면, 그것은 이 책을 한낱 지당한 ‘공자님 말씀’들로 이루어진 인생론집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된다”는 지적(김명인)은 그래서 옳았다.
2004년 <주역>에서 법가까지 자신의 동양고전에 대한 해석을 담은 <강의>를 펴내며 근대의 존재론적 인식을 넘은 관계론적 철학을 이야기할 때도 그의 반자본주의적인 입장은 여전히 또렷했다.
고전을 알기 쉽게 소개시켜주는 지혜로운 인문주의자나 소주병에 글씨를 쓴 탁월한 서예가로만 신영복을 기억할 수는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에게 인문학은 정치경제학 인식을 실천으로 매개할 하나의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조를 인식한 이가 진정한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연장이 바로 인문정신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장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훼손한 것은 박정희로 대표되는 친일매국 쿠데타 세력으로 이는 보수의 영역이 아니고 쓰레기 영역이다”라고 질타한 뒤 “이런 보수의 탈을 쓴 부패한 세력을 도려내고 이재명 같은 사람이 보수의 영역을 차지해야 맞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영복‥개인이 반성해야 할 부분은 머리입니다. 기존 지배 이데올로기를 학습하고 포섭해서 수용하는 형식으로 자기 의식이 결정됩니다. 그 의식을 성찰해서 자기 주체 의식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쿨 헤드’(차가운 머리)를 ‘웜 하트’(따뜻한 가슴)로, 즉 인간적으로 완성해내는 게 필요합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롱기스트 저니(longest journey·장거리 여행)’입니다.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개인은 나무입니다. 전 삶의 현장으로서의 숲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숲은 다양성입니다. 화폐적 가치라는 단일한 가치 중심으로 모든 것을 질적으로 동질화하는 근대성에 대한 성찰의 화두로 숲을 내세웠습니다.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 전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도 공존하는 질서가 진보한 문명의 형태입니다.
또 저의 숲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론’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람시는 완고한 유럽 보수주의 벽 앞에서 아픔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진지를 만들어서 버티자는 얘기에는 도처에 숲을 만들어서 힘도 기르고 그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위로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실천적 의미도 있습니다. 숲은 근대성의 패권적 논리를 성찰하는 문명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인간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키워내는 진지의 운동론적 개념으로 쓰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