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프레스 = 조희선 기자] '과거 나치의 침략으로 입은 피해만 제대로 배상 받아도 구제금융은 필요없다.'

그리스 정부가 금융위기로 인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등으로부터 받고 있는 구제금융의 규모가 독일에게서 받을 2차대전 배상금과 맞먹는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혹독한 구조조정에 내몰린 그리스가 유로존의 돈줄을 쥔 채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독일을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8일 그리스가 2차대전 당시 독일에게서 받은 피해를 산출한 배상금 규모가 1,620억유로(240조원)에 이른다는 그리스 재무부의 조사를 그리스 일간 토 비마를 인용해 보도했다.
 
배상금은 나치가 파괴한 사회인프라 재건 비용 1,080억유로(160조원)와 나치가 그리스 정부로부터 강제로 빌려간 540억유로(80조원)를 합친 것이다. 이는 그리스가 유로존 등 채권단과의 협상을 통해 받기로 한 구제금융 총액 2,400억유로(356조원)의 70% 수준이다. 슈피겔은 "재무부가 2차대전 당시를 기준으로 배상액을 산출한 것이기 때문에 물가상승 등을 감안하면 배상금의 현재 규모는 구제금융 총액과 맞먹는다"고 전했다.
 
배상금 규모는 2차대전 직후 760쪽 분량의 그리스 정부 재정지출 기록 등을 토대로 산정됐다. 이 조사 보고서는 지난달 초 안토니스 사마라스 총리 등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슈피겔은 그리스 정부가 배상금을 실제로 독일 정부에 청구할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그리스가 구조조정 과정 등을 채권단에 분기별로 점검 받고 실적에 따라 구제금융을 수 차례 나눠 지급받는 상황에서 독일의 심기를 건드려봐야 좋을 게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 2010~2011년 네 차례에 걸쳐 1차 구제금융 1,100억유로(163조원)를 지원받은 그리스는 지난해부터 추가 구제금융 1,300억유로(193조원)를 현금지급과 부채탕감 등의 형태로 지원받고 있다.
 
복지혜택 축소 등 구조조정의 고통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그리스 국민은 보고서 내용에 크게 동요하고 있다. 슈피겔은 "그리스에서는 독일에 배상금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절대 다수"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리스 국민은 지난해 10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리스를 방문하자 "고통스런 긴축을 강요한 대표 인물"이라며 그를 나치에 빗대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
 
슈피겔은 "보고서 내용이 두 나라를 감정싸움으로 몰고 갈 만큼의 파괴력이 있다"며 "그리스 정부가 보고서를 한 달이나 늦게 발표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전했다.
 
한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23일 치프라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전쟁배상 요구와 관련해 "이 문제를 무시하지 않고 대화를 계속 해나가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독일은 2008년 세계 금융·재정위기를 계기로 경제·외교적 위상이 높아졌다. 하지만 독일이 지나치게 과도한 긴축조치를 요구한다는 불만과 메르켈 총리가 아돌프 히틀러에 이어 '제4제국' 건설을 꿈꾼다는 견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독일과 그리스의 때늦은 과거사 논쟁이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은 물론 강대국 위주의 현행 전후 보상 기준, 유럽·세계 경제의 미래를 시험대에 올려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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