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왜 기타를 사주셨을까?

우쿨레레의 진화 - 포르투칼에서 하와리를 거쳐 전세계로
우쿨레레의 진화 - 포르투칼에서 하와리를 거쳐 전세계로

 마트 문화센터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는 루미(기자의 딸)의 소망으로 우크렐레를 사러 낙원상가에 들렀다. 배우는 동안 밖에 우두커니 스마트폰이나 만지고 있어야 할 아내를 생각해서 딸과 같이 배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루미가 극구 반대한다. 이유인 즉 창피하다나? 하지만 공개수업을 듣고 나서는 마음을 바꿔먹었다. 엄마랑 같이 해도 된다는 윤허(?)를 내린 것이다. 그래서 두 대에 약 50만원 들여서 악기를 사 버렸다.

몇 년전 하와이에 갔을 때 아내는 우클렐레를 하나 사 가자고 부추겼다. 난, 그냥 장식품이 될 거 같아서 그만 두었다. 왜? 기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클렐레 모양이 기타의 축소판 같았기 때문이었다. 
 
기타의 안 좋았던 추억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의 일인 것 같다. 친한 선배는 클래식기타를 멋지게 쳤다. 기타 치는 모습을 청소년들 모임이나 형네 집에 놀러 갈 때 마다 보곤 했다. 그것이 자극이 되었는지 어머니가 기타를 사주시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대학생 되면 기타치고 놀텐데 보기 좋겠다.’고 항상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한 번 내 뱉은 말에 나는 마음이 동해 기타를 열심히 배울테니 사달라고 졸랐던 것 같다. 선생님은 그 형. 형도 가르쳐 줄 마음이 있으니 잘 해 보자고 했다. 기타를 살 때도 어머니께 돈만 받아서 시내 악기상으로 형과 함께 갔다. 5만 2천원 짜리를 5천원 깍아서 4만 7천원에 샀다. (난, 참 별걸 다 기억한다.)
 
포크 기타도 있고 클래식 기타도 있는데 굳이 클래식 기타를 산 이유는 그  형이 클래식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되실 분이 클래식이 최고라고 주장을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구입한 기타가 클래식 기타. 그런데,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내가 재능이 없었던 건가? 아니면 연습이 부족했던 건가? 진도가 잘 안 나가는 가운데 아니 글쎄, 그 형네 가족이 전부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사 놓은 기타는 어떡하라고.
 
나의 기타 선생님은 본인 나이 17살에 제자인 나를 버리고 멀리 미국으로 떠나가 버렸다.
인천 변두리 송도에 기타학원이 있을리 만무하고 동인천에 나가야 기타를 배울 수 있을 땐데 그러기엔 기타가 너무 컸고 그 만큼 열정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기에 그 때 이후로 내 기타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지금은 중국에 가 있는 친한 형의 소유가 되었지만 말이다. 내 기타는 형들하고 인연이 꽤 깊은가  보다.
 
[Romance]대신 치던 형의 연주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내 생각엔 로망스와  두세곡이 전부 였던 것 같다. 로망스가 워낙 감미롭다 보니 관객들 모두 감탄사 연발, 그 때만 해도 악기를 다룰 줄 안다는 것은 큰 특권이자 행복이었다. 나도 그 특권을 얻고자 행복을 맛보고자 도전을 하였으나, 한마디로 말해서 실패. 실패의 쓴 맛을 본 것이다.
나에게도 미안하고 선물 해 주신 어머니에게도 미안하고.
 
이런 과거의 추억으로 기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고 할까? 기타같이 생긴 현악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기에 아내에게 ‘배우기 싶다.’는 말을 들었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 것으로 산 우클렐레를 교본을 보고 연습하다 보니 정말 배우기 쉬웠다.
여러 악기를 조금 씩 해 오던 가닥이 있어서 싶게 배워 진 것일까?
피아노, 바이올린, 하모니카, 오카리나 이런 것들이 그 동안 내게 거쳐 간 악기들인데 하나가 더해졌다.
우클렐레까지.
 
요즘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일어서’ ‘기다려 줘’등을 연습하고 있다. 80년대를 주름 잡던 노래들이 연주하기가 쉽다. 우클렐레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문득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그 때 어머니는 왜 나에게 기타를 사 주신다고 했을까? 돈 아끼느라고 정말 알뜰하게 사신 분이 그 때 돈으로 5만원이면 거금이었을 텐데. 선뜻 내 주신 까닭이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다음에 만나면 어머니께 꼭 여쭙고 싶다. 그 때 왜 기타를 사주셨냐고?

기타치는 손의 모습에서 서정적인 감흥을 느낄 수 있다.
기타치는 손의 모습에서 서정적인 감흥을 느낄 수 있다.

분명 내가 졸라서 사줬다고 말씀하실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루미에게 어디 가자, 뭐 사줄게. 할 때처럼 내가 가보고 싶은 곳, 내가 갖고 싶은 것 또는 갖고 싶었던 것을 사 주려고 하는 것처럼 어머니도 젊은 시절, 기타를 치고 노는 대학생들의 삶을 부러워하신 건 아닐까? 그래서 자신의 아들도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타를 사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청바지입고 기타 치는 통기타 문화가 유행하던 시절 70년대에 20대를 보내셨을 어머니를 상상해 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요는 아니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못해서 좀 서운했던 것을 자식이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부모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있을 것 같다.

나는 루미에게 어떤 기대가 있을까? ‘루미가 이런 걸 좀 했으면 좋겠다.’ ‘내가 해 보라고 권하는 걸 기꺼운 마음으로 해 보겠습니다하는 마음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너무 욕심이 많은가?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나로서는 혼자서 그걸 다 하기에는 무리니까 루미가 좀 나누어서 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강요할 이유는 없다. 루미가 뭘 하든 행복하면 되는 거니까. 내가 행복해 지려고 딸에게 무엇인가의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부모로서 못할 짓 일테니까. 그냥 마음 속 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찔러는 본다. 한 번 해 보지 않을래? 하고. 그런데 우리 루미는 소신이 뚜렷하다. 한 번 안한다고 하면 절대 안한다. 아무리 회유하고 달래고 꼬셔보아도 안 한다면 안한다. 기특한 녀석.

사랑한다. 나의 이쁜 딸을. 그리고 이쁜 딸을 낳아 준 내 아내도 사랑한다. 이쁜 딸과 사랑하는 아내를 주신 장인어른도 사랑한다. 그래서 나의 인생을 사랑한다.

우클렐레 연습하다 문득 생각 난 ‘어머니는 왜 나에게 기타를 사주셨을까?’라는 의문에 이렇게 두서없는 글이 써 내려져 졌다. 꼭 다음번에 만나 뵈면 ‘어머니도 기타 치고 싶으셨어요?’ 하고 물어봐야 겠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성적 올랐다고 120만원 짜리 오디오 셋트를 사주시는 가 하면, 너무 아파서 생전 처음으로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집에 와 누워 있을 때는 길거리표 음반 두 장을 사서 선물 해 주셨다. 열도 나고 너무 아팠던 나는 어머니가 가수 앨범을 사왔다는 사실이 안 믿어져서 혹시 꿈이 아닐까하고 볼을 꼬집어 보기도 하였다. 어머니께 음악앨범 선물을 받고 아주 행복해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아버지가 사주신 마이마이에 꽂아서 마그네틱이 닳고 닳도록 듣고 또 들었다.

오디오 살 때 에피소드는 아마 평생 기억할 것이다. 군납으로 들어온 것 빼돌려서 사는 건지 일반매장에 가서 모델만 보고 와서는 구입신청을 했는데 기다려고 기다려도 도착을 안 하는 것이었다. 학교에 가면 이제나 저제나 도착할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귀가해 보면 내일, 내일 하면서 자꾸만 미뤄진다. 냉장고랑 같이 싣고 오다가 걸렸다. 마약과 함께 들어오다 걸렸다. 뭐, 이해가 안 되는 별 이유가 다 있었다. 결국엔 그냥 매장에서 구입했다. 지금 자선사업으로 후진국들과 일을 해보니 이해가 되는게 아마도 뒤로 빼돌려서 팔다 적발되고 빼앗기고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그 때 오디오를 기다리는 하루하루는 정말이지 달콤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잊을 수가 없다. 그 기분. 짜릿한 느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짜잔하고 설치되어 있을 것을 기대하는 마음. 결국 전부 허탈함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귀가하기 전까지의 기대감은 그 어떤 즐거움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근데 요즘 그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가 기대되고 귀가 할 때도 기대가 된다. 그 때와 다른 건 허탈함이 없다는 것. 기대한 대로 하루가 즐겁고 힘이 난다. 행복하다. ‘병이 도지나?’ 하고 걱정도 되지만 잘 조절하기 위해서 나름 노력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육적으로 균형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잘 될 거라는 주문(注文)을 외우고 있다.(呪文아니다.) 기도라고 표현해야 될까.

이재훈 기자 patong@kore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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