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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 아내와 10년…'죽음의 질'을 묻는다>김석규 전 주일대사, 간병기록 '파킨슨병 아내 곁에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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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23  06: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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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규 전 주일대사, 파킨슨병 아내 10년 간병기 출간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김석규 전 주일대사가 지난 10년간 파킨슨병에 걸린 아내를 돌본 간병기록 '파킨슨병 아내 곁에서 - 투병 10년의 고통, 간병 10년의 고뇌'(마음풍경)를 최근 펴냈다. 사진은 김 전 대사와 아내 고(故) 송혜옥씨의 모습. 2013.9.23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거동을 못하는 부모를 여러 해 극진히 봉양하는 효자효녀는 주위에 더러 있고, 몸져 누운 남편을 수발하며 자식을 키워낸 억척스런 아내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아픈 아내 곁을 끝까지 지키며 손발이 돼주는 남편은 드물어 영화나 '휴먼 드라마'의 소재가 된다. 최근 출간된 '파킨슨병 아내 곁에서'(마음풍경)는 진단부터 연명치료에 이르기까지 10년간 날마다 아내의 고통에 동참한 영화 같은 남편의 생생한 간병기록이다. 휴먼 드라마의 주인공은 40년간 외교관 생활속에 지난 2000년 주일대사를 끝으로 공직을 마감한 김석규(77) 전 대사.

김 대사가 직접 붙인 부제, '투병 10년의 고통, 간병 10년의 고뇌'는 파킨슨병을 앓는 아내와 그를 돌본 남편이 버텨 낸 인고의 세월을 한 마디로 집약한다. 파킨슨병은 뇌신경세포가 파괴됨에 따라 신체의 기능이 점점 사라져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 퇴행성 질환. 치료법은 주로 증상을 완화시켜 삶의 질을 유지시키는 것일 뿐 완치법은 아니기에, 진단 후 5∼10년에 환자 대부분이 사망한다. '퇴행성 질환'이라는 용어는, 멈출 수도 돌이킬 수도 없고 오직 나빠지기만 하다 종말에 이르게 하는 파킨슨병의 속성을 무심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드러낸다.

김 대사의 아내 고(故) 송혜옥씨는 2002년 감각이 둔해지는 증상이 나타나고 2004년 1월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후 지난 1월 74세로 눈을 감기까지 그 정해진 길을 갔다. 2004년 4월 걷기가 불편해지더니 2006년 6월부터는 말을 전혀 못하게 됐고, 이듬해 8월부터 휠체어 신세를 졌다. 음식물을 씹기 어려워져 2010년 5월부터는 콧구멍으로 밀어 넣은 급식튜브로 영양을 섭취했고, 4개월 후에는 배에 구멍을 내 음식을 위에 직접 주입하는 위루관 시술을 받았다.

아내의 몸에 이상이 생긴 이래 부부는 국내 최고 의료진을 만났고, 용하다는 한의원과 도움이 된다는 치료기기를 다 써보았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육병원으로 유명한 매사추세츠종합병원에도 다녀왔다. 희망은 그 때마다 낙심으로 끝났다. 구세주로 기대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가 사기로 드러난 날 김 대사 부부는 다른 불치병환자들처럼 절망했다.

2010년말부터 아내는 숨은 쉬고 있으나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상태로 악화했다. 목에는 가래를 뽑는 관이, 배에는 영양을 공급하는 관이 뚫린 채로 체온만 유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2011년 5월 세 번째 응급실을 다녀온 후 아내는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는 특수연명치료를 시작하고, 이로부터 약 20개월 후 눈을 감았다.

남편은 이 모든 희망과 절망을 환자와 함께 하며 기록으로 남겼다. 기관지 절개 같은 수술을 할 때나 응급 상황을 뺀 투병 기간 대부분은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환자를 보살폈다. 자연스레 간병은 김 대사와 간병인 공동의 몫이었다. 한밤 중에 자다 일어나 비틀거리는 몸으로 환자를 부축해 화장실에 가면서 혹시라도 힘이 모자라 미끄러져 아내에게 큰 일이 날까 마음을 졸였다. 파킨슨병 특유의 근육강직으로 신체가 뻣뻣해진 아내의 옷을 갈아 입히고 목욕을 시키느라 씨름을 하면서도 '숨 쉬고 쳐다보고 내 말을 경청하는 아내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건강이 나빠져 아내를 돌봐 주지 못하게 될까 걱정해 건강검진도 더 열심히 받았다. 환자의 상태와 진료 기록, 간호·간병 서비스, 진료비 지원정책, 의료기기 구입 목록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미장원에 가서 마지막 파마를 한 날'이나 아내의 중학교 친구들의 방문 같은 일상을 세세히 남긴 대목에서는 대놓고 표현하지 않았어도 아내를 향한 깊은 애정이 생생히 살아난다.

무엇이 김 대사를 이토록 헌신적인 남편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는 책에서 "사랑이라기보다는 책임, 의무, 체면, 연민, 그리고 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 대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잘 모르겠지만 정 때문인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길고도 고통스런 간병을 하면서 "그 어떤 병원이나 요양원보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아내가 이대로라도 오래 오래 살아달라고 기도한"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말기환자와 고통을 지켜보는 가족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책을 냈다고 한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서 '죽음의 질'에 관한 질문을 환자와 가족, 일반 독자에게 던진다. '간병 살인'을 저지른 가족의 비극적 뉴스가 잊을 만하면 되풀이 되고, 정부가 연명치료 절차를 법제화 한다는 요즘, 이 질문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는 책에서 연명치료 시행의 옮고 그름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이제 우리는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며 환자의 자기 결정권에 조심스레 동조한다.

김 대사의 아내는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는 연명치료를 2년 가까이 받았다. 안타깝게도 임종의 계획을 세울 마음의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한 채 육신이 쇠약해버렸다. '다시 결정한다고 해도 아내의 연명치료를 찬성하겠느냐'는 질문에 김 대사는 잠시 생각한 후 이렇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아내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지만 아내는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거든요. 저도 연명치료를 일종의 '덤'이라 생각했어요.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 김석규 전 주일대사, 파킨슨병 아내 10년 간병기 출간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김석규 전 주일대사가 지난 10년간 파킨슨병에 걸린 아내를 돌본 간병기록 '파킨슨병 아내 곁에서 - 투병 10년의 고통, 간병 10년의 고뇌'(마음풍경)를 최근 펴냈다. 사진은 서울대병원 전경을 담은 책표지. 2013.9.23 photo@yna.co.kr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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