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에 잠 설치기도…내복, 시계 등 선물도 미리 준비

남북이 16일 교환한 추석 이산가족 상봉 최종 대상자 명단에 오른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60년을 기다려온 가족을 드디어 만난다는 감격과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헤어질 당시에는 이별이 이처럼 길어질 줄은 몰랐다고 토로하며 '통일'을 염원했다.

남측 상봉 대상자 가운데 최고령자로 이번에 동생들을 만나게 되는 김성윤(95) 할머니는 즐거움에 흥겨워하며 "생전에 혈육을 만나게 됐으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고 아들 고정삼(66) 씨가 이날 전했다.

해방 이듬해 남편과 자녀, 친정 동생 두 명과 일찌감치 남쪽으로 내려온 김 할머니는 북에 두고 온 부모님과 세 명의 여동생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 같이 내려가자고 못 한 것이 한"이라며 가슴을 쳤다고 한다.

이처럼 그리워한 동생들을 만나게 된 김 할머니는 "얼굴도 못 알아볼 텐데"라며 속절없이 지나간 세월을 타박하면서도 벌써 내복과 티셔츠, 시계 등 선물을 준비하며 재회의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이제는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라며 헤어진 가족들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날을 그리고 있다.

평양에 혼자 나와 직장생활을 하다 6·25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진 박운형(92·경북 경산시) 할아버지도 이날 전화통화에서 "말할 수 없을 만큼 좋다"며 "두 세상을 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딸과 동생 두 명을 만나는 박 할아버지는 "피난할 때 '2-3개월이면 돌아올 수 있겠지' 하고 내려왔는데 이렇게 돼 버렸다"며 "예닐곱 살이던 딸아이가 이제는 예순일곱 살이라고 한다"라고 한탄했다.

그는 "이번에 만나면 '통일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죽지 말고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할 것"이라며 "통일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번에 여동생들을 만나는 김철림(94) 할아버지는 상봉 대상자로 확정됐다는 소식에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기쁜 마음에 밤에는 잠도 이루지 못한다.

김 할아버지의 한(恨)을 수십 년 동안 지켜본 아들 강석(53) 씨는 "아버지는 평소 여동생들에 대해 너무나도 많이 말씀하셨다"며 "아버지의 소원이 이뤄져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6·25전쟁 때 강원도 고성군에서 헤어진 남동생과 여동생을 만나게 된 장귀순(94) 할머니는 담담하게 재회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장 할머니의 아들 김만철(64) 씨는 "어머니가 이산가족 상봉의 명단에 든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우리 가족이 어머니를 모신 정성으로 된 것 같다"라고 자축했다.

강능환(92·서울 송파구) 할아버지는 이번에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아들을 만난다.

전쟁통에 홀로 남한에 내려오고 난 뒤에야 아들의 존재를 알게 된 강 할아버지는 "아들을 만나게 돼서 참 좋다"는 말로 기쁨의 표현을 대신했다.

그러나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북한의 직계가족이 사망하거나 본인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가 늘어나면서 상봉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포기하는 사례들도 잇따랐다.

북측 가족의 생사확인을 거쳐 상봉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된 남측 상봉 후보자는 원래 117명이었다. 하지만 이 중 21명이 상봉을 포기하면서 남측 최종 상봉 대상자는 당초 계획된 100명보다 적은 96명에 그쳤다.

최종 명단에 오른 96명 중에서도 일부는 북한에 직계가족이 아닌 친척만 남아 있어 뒤늦게 상봉을 의사를 철회하거나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상봉을 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에 어릴 때 함께 자란 조카 2명을 만날 예정인 이기숙(81) 할머니는 "한집에 살며 형제처럼 지냈던 조카들을 꼭 보고 싶지만, 거동이 불편해 걱정"이라며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으면 가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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