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선생 손자…재러 독립운동가 76명 조명한 책 집필

고려인 항일운동 역사 복원하는 최 발렌틴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의 손자로, 러시아 한국독립유공자후손협회를 이끌며 고려인 항일운동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힘쓰고 있는 최 발렌틴 회장. 2013.10.23 >    mihye@yna.co.kr
고려인 항일운동 역사 복원하는 최 발렌틴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의 손자로, 러시아 한국독립유공자후손협회를 이끌며 고려인 항일운동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힘쓰고 있는 최 발렌틴 회장. 2013.10.23 > mihye@yna.co.kr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한 민족이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는 언어와 역사입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있다면 차차 알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 같은 사람들의 역할이죠."

연해주 항일운동의 대부 최재형(1858∼1920)의 손자인 최 발렌틴(76) 러시아 한국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장은 1995년 협회를 설립할 때부터 지금까지 고려인들의 항일 독립운동 역사를 되짚는 데 매진하고 있다.

2004년 독립운동가 40명을 조명한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을 출간했고 내년 고려인 이주 150년을 맞아 러시아를 무대로 활약한 77명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한 책을 추가로 낼 예정이다.

㈔최재형장학회의 창립 2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는 23일 서울 효창동의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 국민이 여전히 독립운동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라고 감사 인사를 우선 전했다.

세 권의 책을 통해 할아버지의 삶을 복원하기도 한 최 회장이지만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가 조국 독립에 크게 기여한 항일운동가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고 한다.

스탈린 치하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입 밖에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탈린 사후 고모와 함께 친척집에 갔는데 친척들이 기립박수로 우리를 환영하며 할아버지 이야기를 처음 들려줬어요. 할아버지가 그렇게 훌륭한 분이라는 사실을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화도 났죠."

한국에서 최재형 후손으로 인정받은 것은 그보다 한참 뒤의 일이었다.

1990년 한·소 수교 이후 한국 정부가 1962년에 최재형에게 훈장도 수여했고 행방이 묘연했던 유해도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국립묘지에 안장된 사람은 최재형이 아닌 엉뚱한 사람이었고 수십 년 동안 가짜 유족이 최재형 후손을 자처하며 보상금을 받아왔던 것이었다.

"독립운동가 이인섭(1888∼1979)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1920년 우스리스크에서 일본군에 체포된 후 총살되셨습니다. 총살 후 땅에 묻어버리고는 발자국도 없이 흔적을 지웠다고 하더군요. 아직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최재형 외에도 많은 재러 독립운동가들이 냉전시대 한국과 러시아의 교류가 단절된 탓에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최 회장은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2∼3세들이 고령으로 연금을 받으며 힘들게 살고 있다"며 "협회에서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을 조명하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내 독지가의 후원을 받아 동북아평화연대가 설립한 ㈔최재형장학회는 국내에서 유학하고 있는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 출신 고려인 학생들을 돕고 있다.

"평화주의자였던 할아버지는 교육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셨고 재능있는 젊은이들의 교육을 많이 지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최재형장학회는 이미 1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죠.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장학회가 운영되고 있어 할아버지에게나 후손들에게나 큰 영예입니다."

최 회장은 내년 고려인 이주 150주년을 앞두고 더욱 바쁘다.

러시아 각지 문서보관소를 돌며 쓴 독립운동가 77명에 대한 책은 집필을 마무리하고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어 번역도 완료했고 영어 번역도 준비 중이다.

"내년에 맞춰 책을 출간하고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에 대한 학술대회도 개최하려고 합니다. 자금이 마련되지 못해 아직 계획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많은 분이 관심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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