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08 13: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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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사진을 박아넣은 ‘조국 수호’ 피켓이 물결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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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0-02-03 20:02:44
조회수
882
2019.10.12.


[ ...... 조국이었다. 무대 위 스크린에서는 그의 웃는 얼굴 동영상이 반복됐고 인파 속에서는 그의 얼굴 사진을 박아넣은 ‘조국 수호’ 피켓이 물결쳤다 ....... ]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이틀만에 시효 다한 마지막 ‘조국 수호’ 집회 무엇을 남겼나


[중앙일보] 입력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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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9차 촛불집회의 한복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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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날의 주인공은 역시 조국이었다. 무대 위 스크린에서는 그의 웃는 얼굴 동영상이 반복됐고 인파 속에서는 그의 얼굴 사진을 박아넣은 ‘조국 수호’ 피켓이 물결쳤다. 개그맨 강성범, 서울대 우희종 교수 등이 무대에 서서 조국 수호 연설을 했다. 대검찰청 외벽엔 ‘당신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라는 빔 프로젝트가 반복됐다. 아이돌 스타 못지않은 팬덤의 향연이었다.



팬덤의 실체는 딱 둘로 나뉜다. 하나는 그의 외모, 따른 하나는 문프(문 대통령) 지지의 연장선이다. SNS에서 숱하게 봤던 ‘전국미남보존협회’ 명의의 ‘힘내라 조국’ 현수막과 깃발이 나부끼는 건 그의 외모에서 기인한다. 그가 뭘 했는지, 또 뭘 할 수 있는지보다 그의 외모에 끌린 팬덤은 증거 인멸 범죄의 피고인인 그의 아내 정경심 교수와 대학·대학원, 의전원까지 모두 가짜 스펙으로 들어간 그의 딸 조민씨로까지 확장됐다.


이날 집회 사회를 맡은 개그맨 노정렬은 검찰의 비공개 소환을 비롯해 조사 시간보다 조서 열람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온갖 특혜를 받은 정 교수를 놓고 거꾸로 “떡검들이 초미세먼지털이식으로 망신주고 인격모독했다”며 “정 교수님 힘내세요 사랑합니다”를 선창했다. 지난 집회 땐 생일날 온 가족이 모여 생일 파티를 못 한 조민씨가 불쌍하다며 생일노래 떼창까지 나왔다고 한다.


기자들이 28세인 조민씨를 밤 10시에 찾아갔다고 인권유린이라며 목청을 높이는 이 사람들은 불과 3년 전 고작 20살짜리 젊은 여성에게 가해진 온갖 모진 일엔 환호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두 돌 안 된 아이와 함께 덴마크에 머물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 얘기다. 그를 좇던 기자는 한밤에 정유라를 발견하자 불법체류로 현지경찰에 고발했고, 불법체류가 아니었던 정씨는 현지 경찰에 구금당한 후 특검의 긴박한 범죄인인도 청구 요구로 감옥에 구금됐다 결국 수개월 만에 수갑을 찬 채 귀국해 포토라인에 섰다. 입시 비리로 이미 고교 졸업 자격까지 박탈된 그에게 당시 특검은 입시비리에 따른 업무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도 윽박질렀다. 입시 비리의 기획자가 아닌 수혜자라는 점에서 조민씨와 똑같은 상황이었는데 검찰과 언론에서 받은 대우는 이렇게 달랐다. 누구도 인권을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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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차 집회엔 서울신문이, 이번 9차 집회는 YTN이 수 시간에 걸친 집회 전 과정을 온라인으로 실시간 생중계하고 지상파 KBS·MBC는 물론 친여매체 한겨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언론은 사실상 조국 가족 수사 중단을 위한 촛불집회에 검찰 개혁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한 왜곡에 가까운 보도를 경쟁적으로 내보냈다. 그런데도 이들은 고위 공직자와 그 가족의 비리 의혹, 즉 사실을 보도하는 소수의 언론을 적폐로 몰며 언론개혁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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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joins.com/article/23603824





2019.12.7. 민노총 --- 통진당 이석기




[ ..... 민노총 등 56개 단체가 참가 ....... ]


[ ..... 이석기 전 의원의 얼굴 사진이 붙은 하늘색 피켓을 .......

.... "우리가 이석기다!" ....... ]



이석기 사진 들고 북치고 춤추고… 우상숭배 같던 친북집회



조선일보 최원국 기자

2019.12.09



같은색 옷 맞춰입고 靑으로 행진… 피아노·통기타 동원해 공연도

여의도선 "조국 잊지말자" 집회 열고 정경심에 편지 보내기 운동



지난 7일 오후 3시쯤 하늘색 셔츠를 맞춰 입은 군중 수천명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로 춤을 추며 행진하기 시작했다. 왕복 4차선 도로를 가득 채운 대열의 선두에서는 300여명이 드럼을 두드렸고, 수제 타악기도 동원해 흥을 돋웠다. 뒤따르는 군중이 그 장단에 맞춰 군무(群舞)를 펼쳤다. 행사 사회자가 스피커를 통해 "이 (북)소리는 야만을 떨치는 정의의 북소리" "굳게 닫힌 감옥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했다.



마침내 도착한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는 그랜드 피아노 수십 대가 놓여 있었다. 통기타, 하모니카 등 다른 악기도 보였다. 주최 측은 "피아노 50대, 통기타 100대, 하모니카 100대 등으로 구성된 450인 합주단이 이석기 의원 석방을 염원하는 공연을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이 집회는 이석기 전 국회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였다. 이 전 의원은 북한과 동조해 국가 기간 시설을 타격하는 방안을 논의한 혐의로 2013년 징역 9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친북(親北), 친문(親文) 단체 주도 집회에서 특정인에 대한 우상화와 종교적인 숭배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날 이석기 석방 집회에는 민노총 등 56개 단체가 참가했다. 오후 2시부터 서울역과 독립문, 을지로, 종로 등에서 단체별로 행진을 시작해 광화문광장에 집결했다. 여러 단체 소속임에도 참가자들은 하늘색 재킷을 맞춰 입고 하늘색 깃발을 흔들었다. 한쪽에서는 수백 명이 이석기 전 의원의 얼굴 사진이 붙은 하늘색 피켓을 들었다. 참가자들은 사회자 지휘에 맞춰 "우리가 이석기다!"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야구장이나 콘서트장에서 응원하는 팀이나 사람의 상징 색깔 옷을 맞춰 입은 팬들의 행동 같았다. 가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합창하기도 했다.



집회에서는 이 전 의원이 옥중에서 보낸 편지가 낭독됐다. 이 전 의원은 편지에서 "계급의 문제에서 여당과 야당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농지개혁처럼, 자산 재분배 정책과 같은 대담하고 근본적인 발상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낭독이 끝나자 한 집회 참가자가 무대에 올라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을 대통령이, 정부가 나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이 전 의원의 편지에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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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7.


[ ...... "이석기를 석방하라" .......

...... 민주노총과 민중당 등 60여개 단체 ... 참석 ....... ]




'피아노·드럼 수백개 두드린' 이석기 석방집회..."굳게 닫힌 감옥문 두드리는 소리"


고성민 기자
이은영 기자
이소연 기자


2019.12.07



"이석기 석방이 正義다" 특사 앞두고 ‘또’ 대규모 집회
피아노·드럼·수제 타악기 수백개 등장…바투카다 연상


주최 측 "굳게 닫힌 감옥문을 두드리는 소리"
옥중서신 보낸 이석기 "조국 사태, 가진 자의 낯을 그대로 봤다"


정부가 연말·연초 특별사면을 검토하자,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지지자들이 또다시 "이석기를 석방하라"며 7일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지난 8·15 광복절 특사를 앞두고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지 4개월여 만이다.



◇피아노 36대 등 수백대 악기 동원…이석기를 석방하라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구명위원회(‘이석기 구명위’)는 이날 오후 4시 청와대 앞에서 ‘12·7 이석기 석방대회’를 열고 이씨 특별사면을 요구했다. 집회에 앞서 오후 2시부터는 ‘이석기 석방이 정의(正義)다’, ‘감옥에서 7년째’라는 문구와 이씨 사진이 인쇄된 손피켓을 들고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로 행진했다. "이석기를 석방하라" "(이석기는) 평화를 말한 사람" 등의 구호를 외쳤다.



청와대 앞엔 그랜드 피아노 36대가 등장했다. 바로 옆 무대 위에선 300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이 통기타와 우쿨렐레, 하모니카를 들고 합주를 했다. 이들은 가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연주하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이를 본 인근 주민은 "남의 집 앞을 다니지도 못하게 다 막아놓고 뭐하는 거냐"며 큰소리로 항의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로 행진하는 동안 300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축제처럼 수백개의 드럼과 타악기를 동원해 바투카다(Batucada) 군무를 펼쳤다. 바투카다는 브라질 흑인들이 집단적으로 추는 춤의 일종이다. 드럼이나 수제(手製) 타악기, 손뼉 등 리듬을 타면서 원형으로 춤을 추는 식이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힙합 춤을 추기도 했다. 주최 측은 "야만을 떨치는 정의의 북소리" "굳게 닫힌 감옥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서울역과 서울시청을 지날 때는 인근 보수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보수집회 참가자들은 이석기 집회 참가자들에게 "이석기는 감옥으로" "빨갱이들이 들끓는다"고 소리쳤다.


이날 집회에는 통진당 출신 인사들을 비롯해 민주노총과 민중당 등 60여개 단체 약 1만2000여명(주최측 추산)이 참석했다.




이씨는 내란음모·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2013년 구속됐다. 대법원은 이씨가 전쟁 발발 시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를 통해 북한과 동조해 통신·유류·철도·가스 등 국가 기간 시설을 타격하는 방안을 논의한 혐의(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 등)를 유죄로 확정하고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이석기 옥중서신 공개…"조국 사태, 가진 자의 낯을 그대로 봤다"


이날 집회 연사로 나선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지는 나라라면 도무지 만들어질 수 없는 사법적 판단에 의해 이석기 의원이 골방에 갇혀 있다"며 "지난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은 현 대통령과 정부가 바로잡아야 한다. 이석기 석방이 곧 촛불 혁명"이라고 했다.


이어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는 "촛불로 들어선 정권이 이다지도 모질 수 있느냐"며 "문재인 정권은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느냐"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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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7년째!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의원 석방대회'


추광규 기자 | 기사입력 2019/12/07 [10:50]




'이석기 석방 대회’...광화문,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다!

추광규 기자 2019/12/07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는 대회가 오늘(7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광화문과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다.



'감옥에서 7년째!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의원 석방대회'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날 대회는 60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주최주관하는 이날 행사는 전국 각지의 2만여 명이 광화문으로 결집해 청와대로 행진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대회에서 진행될 대규모 행진에서는 역대 최대규모의 300인 바투카다 대열이 선두에 선다. 또 청와대 앞 마무리 집회에서는 상징 퍼포먼스로 '이석기 의원 석방'을 염원하는 피아노 50대, 통기타 100대, 하모니카 100대, 오카리나 100대, 우쿨렐레 100대로 구성된 450인 합주가 예정되어 있다.



행사의 대미는 이 합주에 맞춰 2만 참가자가 함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합창이 장식할 예정이다.



청와대 앞 집회에서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태호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이상규 민중당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며 이석기 의원 석방을 촉구할 예정이다.



특히, 대회 막바지에는 이석기 전 의원의 옥중 서한을 낭독하는 순서가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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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퍈 이날 공동주최주관하는 69개 단체는 다음과 같다.



공동주관 (13개단체)

: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서울 구명위/인천구명위/경기구명위/강원구명위/충남구명위/대전구명위/전북구명위/광주구명위/전남구명위/제주구명위/울산구명위/ 청년.학생.청소년구명위



공동주최 (56개단체)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사)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구속노동자후원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인권센터/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민중공동행동/

한국진보연대/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국여성연대/한국청년연대/전국빈민연합/빈민해방실천연대/가톨릭농민회/노동인권회관/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민주노동자전국회의/국민주권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통일광장/새물약사회/민족문제연구소/사월혁명회/통일의길/코리아국제평화포럼(KIPF)/4.27연구원/서울진보연대/경기진보연대/광주진보연대/전남진보연대/대구경북진보연대/부산민중연대/울산진보연대/경남진보연합(준)/

촛불문화연대/노동자연대/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전태일 재단/인권중심“사람”/다산인권센터/인권운동사랑방/민생문제연구소/평화재향군인회/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천주교인권위원회/천주교수원교구정의평화위원회/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불교인권위원회/실천불교전국승가회/원불교인권위원회/예수살기/주권자전국회의/사회변혁노동자당/민중당(56개단체)



http://lawyersite.co.kr/1442







“감옥에서 7년째, 이석기 의원 석방이 정의다”



추광규 기자 2019/12/08



연말 사면이 큰 폭으로 이루어지고 여기에 정치인들도 상당수가 포함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7년째 수감중인 이석기 전의원이 포함될지에 관심이 간다.


이런 가운데 7일 오후 3시부터 광화문과 청와대 인근에서 '감옥에서 7년째!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의원 석방대회'가 열렸다.



69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주최주관하는 이날 행사에 앞서 오후 2시부터는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시민 2만여 명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청와대로 행진을 진행하였다. 서울역, 독립문, 을지로, 종로 총 4개 방향에서 출발한 대열은 300인 바투카다(브라질 타악기) 대열을 선두로 서울시내를 행진해 3시에 광화문 광장에 집결하였다.



참가자들은 이석기 의원 얼굴 피켓을 높이 들고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석기 의원석방하라", "감옥에서 7년째다,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광화문 광장을 거쳐 청와대 사랑채 앞에 당도한 참가자들은 4시경 마무리 집회를 진행하였다. 집회에서는 상징 퍼포먼스로 '이석기 의원 석방'을 염원하는 피아노 50대, 통기타 100대, 하모니카 100대, 오카리나 100대, 우쿨렐레 100대로 구성된 450인 합주단의 공연이 펼쳐졌다.



집회에서는 장원섭 통합진보당 전 사무총장이 이석기 의원의 옥중편지를 대독하였다.



이석기 의원은 서한에서 “촛불 혁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민중이 거리에서 찬바람과 맞서야 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로 나아가자는 열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지들이 저의 석방을 외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고 심경을 전했다.



또한 이석기 의원은 “친미냐, 반미냐, 친중이냐 반중이냐는 질문을 거부하고, 우리 스스로 서서 우리 민중의 이익을 중심으로 협력하자는 것이 자주”임을 강조하며, “미국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가 한미동맹의 낡은 틀을 고집할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라고 주장하였다.



최근의 이른바 ‘조국 사태’와 관련한 언급도 있었다. 이석기 의원은 “구조적인 불평등, 그러한 불평등의 세습, 그리고 이와 같은 계급의 문제에서 여당과 야당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고 평가하며, “(해방 이후) 농지개혁처럼, 자산재분배 정책과 같은 대담하고 근본적인 발상이 필요합니다. 구조적 불평등, 세습되고 있는 계급관계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들지 않고서는 우리는 한 치도 전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 주장하였다.



서한 마무리에서 이석기 의원은 “자주 평등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는 이들이 하나의 정치적 힘으로 단결한다면 민중의 새날은 어느새 닥쳐올 것입니다.”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였다.



서한 낭독에 이어 각계 인사들이 연단에 올라 석방을 촉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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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유엔인권선언에는 신념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가 있다. 이것이 인권의 제 1 원칙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이석기 의원을 가두어 둔다면 촛불정신과 민주주의는 제 길을 갈 수 없다."라며 이석기 의원 석방을 촉구하였다.



이상규 민중당 상임공동대표는 “수천 수만의 이석기가 힘차게 뻗어가는 이 행진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며, “민중의 친근한 벗 이석기 의원과 함께 새로운 백년을, 자주의 정치인 이석기 의원과 함께 새로운 천년을 만들어나가자”고 주장하였다.



행사의 대미는 450인 합주에 맞춰 2만 참가자가 함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합창이 장식하였다. 이날 대회에 앞서 10시에는 이석기 의원이 복역하고 있는 대전교도소 앞에서 '감옥에서 7년째다. 이석기의원 석방하라! 대전교도소 결의대회'가 2천여 명 규모로 개최되었다.



한편, 이날 행사에 즈음하여 각계의 이석기 의원 석방 탄원서가 청와대에 전달되었다.



최근 제출된 1차 탄원서에는 김희중 대주교,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오도철 원불교 교정원장 등 주요 종단 지도자와 정강자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김민문정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백미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신철영 경실련 공동대표, 김호철 민변 회장,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자가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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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imb.or.kr/a.html?uid=4571







2018.12.8.



[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 “70년 분단의 적폐를 걷어내는 길은 이석기 전 의원과 감옥에 갇혀있는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는 것” .......


...... 이석기 .... “촛불혁명의 완수를 위해 힘을 합치자. ........ ]




“분단적폐 청산의 길은 모든 양심수 석방”

1만여 명 광화문광장서 ‘사법적폐 청산 종전선언 촉구, 이석기 석방대회’



조혜정 기자

2018.12.09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와 56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한 ‘사법적폐 청산, 종전선언 촉구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광장에 모인 1만여 참가자들은 “이석기 전 의원은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의 최대 피해자”라며 이석기 전 의원과 양심수의 전원 석방을 촉구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지난 2013년 이른바 ‘내란선동’ 혐의로 징역 9년을 선고받고 현재 6년째 복역 중이다.


대회에선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방송인이자 시사평론가인 김용민씨 등이 무대에 올라 “70년 분단의 적폐를 걷어내는 길은 이석기 전 의원과 감옥에 갇혀있는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세훈 시인과 가수 안치환씨, 락밴드 타카피도 시낭송과 노래 공연으로 참가자들과 함께 ‘양심수 석방’ 목소리에 힘을 실어 큰 박수를 받았다.



이석기 전 의원은 옥중편지를 보내 참가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 전 의원은 편지에서 “광장에 모인 분들이 춥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저의 석방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했다. 이어 “오늘 이렇게 마음을 모아주신 것은 저의 구명만을 위해서가 아닌, 촛불을 들었던 시민으로서 흔들리는 촛불혁명을 끝까지 완수하기 위해 모이신 것 같다”면서 “촛불혁명의 완수를 위해 힘을 합치자. 우리 한번 잡은 손 놓지 말자”고 힘줘 말했다.


서울진보연대, 서울여성연대(준), 민주노점상전국연합은 이날 ‘석방어묵’이란 이름으로 참가자들에게 따뜻한 어묵탕을 제공해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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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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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 ...... 학급마다 「레닌」「스탈린」의 초상화를 걸도록 강요 ....... ]



10.강성재 기자, 남북의 대화 <51>

신의주학생 반공의거 괴뢰 김일성의 등장 ⑩,

동아일보 1972년 2월 5일자 4면



그러면 신의주 학생사건의 도화선이 된 용암포 사건을「현장」에 있었던 이도명(李道明)씨(46·당시 신의주 제일공업학교 3년 재학·현 서울 대광국민교 교감)로부터 들어보자。


“용암포 인민위원회 주최로 11월 18일인가 열린 시민대회는 일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이 대회에서 학생대표가 공산당의 비행을 고발하고 또 공산당에 뺏겨 정치훈련소로 쓰고 있던 『수산학교를 내놓으라』고 외치자 군중들이 들고 일어나 함께 『공산당 타도』를 외쳐 대회는 엉뚱하게 공산당규탄대회로 돌변했지요。그런데 조금 후 군중 속에 끼어있던 공산도당들과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 대회장인 제일교회 부근의 부자집들을 습격、기물을 부수고 폭행을 가하고 사라졌읍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학생 60여명은 인민위원장 이용흡(李容洽)과 직접 담판하겠다고 찾아갔는데 거기서 그가 양시(楊市)쪽으로 도망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됐읍니다。그래서 학생 약40여명이 용암포에서 양시로 통하는 도로 한가운데 장작을 쌓아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놓고그 부근 골목에 숨어 이용흡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읍니다。그런데 어둑어둑해지자 양시방면에서 용암포로 30여명의 노동자와 공산도당들이 떼지어 왔읍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괭이 호미 몽둥이를 든 이들은 바리케이드 앞 20여m에 이르자 돌진해 들어와 붙잡히는 대로 뭇매를 가했읍니다。순식간에 기습을 당했을 뿐 아니라 맨손으로 대항할 수 없어 학생들은 골목길로 논바닥 등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읍니다。도망가다 붙잡히면 가차없이 몽둥이에 얻어터졌지요。이 광경을 보다 못한 제일교회 홍석황(洪錫璜)장로가 이를 만류하자 『너는 뭐냐。이 예수장이』하면서 몽둥이로 머리를 후려치니까 두 눈이 튀어나오는 등 치명상을 입고 곧 절명했읍니다。


용암포 사건은 이걸로 끝났읍니다。나는 그때 용암포와 신의주 간의 기차통학생 동지회장을 맡고 있었읍니다。다음날、기차로 올라가서 당시 결성돼 있었던 평북학생자치회에 이 사건의전말을 자세히 알렸읍니다。”


용암포의 참변을 전해들은 신의주시내 6개 학교 3500여 학도들은 학생대표들의 지휘에 따라 23일 낮 일제히 봉기、분담된 바에 따라 도 보안부와 공산당 본부등을 각각 습격 접수키로 했다。



▲박선봉(朴善鳳)씨(46)· 현 신의주 반공학생의거기념회부회장· 당시 평안중학 졸업반)= 공산당의 활동이 노골화되면서 숙청바람이 불고 학교에도 태극기 대신 붉은 기를 달게 하고 학급마다 「레닌」「스탈린」의 초상화를 걸도록 강요한데 불만을 품어오던 차에 용암포 사건이 터졌다고 해요。기차 통학생들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신의주시내 6개 중학생 대표들은 제일공업 윤순호(尹淳浩)군 집에서 2、3차례 밀회를 갖고『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다』는데 의견이 일치되었읍니다。그때 반공애국청년단체인 「우리청년회」의 유형무형의 지원도 계산했었지요。

22일 동중학교 강당에서 학생대표들과 만난 당시 도 학무국장 함석헌(咸錫憲)씨는 거사의 뜻을 알리자 의로운 일을 억제할 수 없지 않느냐는 의미의 말을 해 학생들의 결심을 굳게 해준 일도 있읍니다。


23일이 되어 내가 다니던 평안중학과 상업학교는 신의주 보안서를 습격하기로 돼 11시부터 각기 교정에 모여 연락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모든 계획의 본부격인 제일공업학교에서 12시에 거사하자는 연락을 받아오던 학생이 중도에 그 무렵 행패가 가장 심했던 특별보안대원을 만나『너 오늘 죽어봐라』며 싸움을 벌이는 통에 늦어 이날 1시경에야 학교문을 나섰읍니다。남신의주의 「평중」에서 보안서까지는 약 4㎞나 됐읍니다。


1천여명의 두 줄로 된 학생대열이 「공산당타도」의 구호를 외치며 소련군이 점령하고 있는 비행장 옆을 지나쳤는데 그때 보니까 200m앞 둑 위에 기관총이 걸려 있었고 보안대원들이 공포를 쏘고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신의주에 못들어 간다고 소리치고 있었읍니다。대치하고 있던 학생들이 몇 개 분대의 특공대를 편성하고 투석전을 막 벌이는 순간이었읍니다。


그 비행장에서 소련군 「야크」기가 몇 대 뜨더니 이내 기총소사를 퍼부었읍니다。그러자 학생들은 도로 옆 논두렁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읍니다。나도 몸을 피해 벼 낱가리 속에 숨어서 보니까 「야크」기는 학생들과 약간 떨어진 논바닥에다 마구 기관포를 쏘더군요。우리들은 눈물을 머금고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1948.4.


[ ..... 집집마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사진을 일제시대의 천황사진 모시듯 위하고 ........


..... 요즈음은 금족령이 내려 외출을 못한다고 ......... ]


[ ..... 학생들이 열을 지어 노래를 부르면서 지나가는데 첫째 그 복색이 빈약하기 짝이 없고 그중에는 걸레같은 옷을 ....... ]



동아일보 1948년 04월 27일

신화당당수 文容彩, 북조선시찰담 피력



남북협상에 참석하기 위하여 지난 20일에 서울을 출발한 新化黨 당수 文容彩는 38선 부근 남천에 4일동안 강금당하고 있다가 24일 아침에 서울에 돌아왔는데 방문한 기자에게 며칠동안 그가 보고 온 이북의 생생한 소식을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우리는 이번 남북회담을 기회로 그 회담광경을 구경할겸 이북의 모든 상황을 좀 살펴보려고 갔는데 회담 구경은커녕 38경계선 부근 남천에서 약 나흘동안이나 감금당하고 말았는데 그들 관헌의 소행으로 미루어 남북회담이 환멸의 비애를 느끼고 서울로 돌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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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여관이란 숙소에 들어갔는데 감시하는 보초가 총에다 칼을 꽂고 문밖에도 못나가게 하고 변소에 갈 적에도 보초병이 따라 다니니 산보삼아 거리에 나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을 속여 잠깐 문밖에 나가 보니 거리는 쓸쓸하고 사람하나 볼 수가 없어 옆집 노인에게 그 연고를 물어보니 요즈음은 금족령이 내려 외출을 못한다고 머리를 쩔쩔 흔들면서 기운없이 대답하였다. 다 같은 피가 흐르고 있는 동족끼리 말 한 마디 못하게 외출을 금지하는 이북 관헌들을 나는 다시 한번 새롭게 원망하고 분함을 금치 못하였다.



그런데 저녁때쯤 되니 거리에 학생들이 열을 지어 노래를 부르면서 지나가는데 첫째 그 복색이 빈약하기 짝이 없고 그중에는 걸레같은 옷을 감고 있는 학생들이 있어 남조선 학생들은 아직 행복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사진을 일제시대의 천황사진 모시듯 위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일제시대의 재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났었다.


23일 밤에는 평양 중앙민전에서 누가 왔다기에 그이를 만나 여러가지 이야기하던 끝에 실업자는 없는가 하고 물어보니 실업자가 많다고 대답하기에 어째서 실업자가 없다는 곳에서 그렇게 실업자가 있는가 하고 반문하니 우물쭈물 답변을 못하였다.


그리고 그쪽 신문을 몇 가지 주는데 보니 전지면이 백힌듯이 꼭같은 공산주의 선전이고 변화가 없어 싫증이 나서 그래도 남조선의 신문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여간에 이북은 말 한마디 자유롭게 못하는 가슴이 답답하고 감옥에 얽매여 있는 듯한 곳이라는 감을 주게 한 것은 아마 나 개인의 감상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 가로와 실내에 遍滿하게 金××과 스××의 사진을 모신 것 ....... ]


* 1948.4. [ 南北協商 참가 某黨의 결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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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한의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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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韓人 當路者들은 독립은 못 되었을 망정, 정권의 이양을 받았다고 만족해하는 동시에 傲驕한 태도가 현저한 것


7. 한인 당로자들의 소련과 소련인에 대한 호감은 우리 조상들의 明에 대하였던 그것과 꼭 같은 것

8. 가로와 실내에 遍滿하게 金××과 스××의 사진을 모신 것


9. 전시 기분이 충만하여 투쟁목표를 확정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국제적으로는 미국을 적이라고 규정하고 국내적으로는 ×××박사와 金××씨를 친일파·민족반역자의 수괴로 지정한 것


10. 인민의 얼굴에는 飢餓의 색채가 있고 태도에는 공포가 있는 것

11. 전부가 인간성을 떠나 기계화한 것

12. 자유기분이 결여한 독재적 태도가 처처에 나타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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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南北協商을 비판 : 某黨의 결산서>


게재지명 조선일보

게재일자 1948년 10월 10일



1948년 4월 미소 양군정하에 있어 자율적이란 입장으로 평양에서 개최한 남북정당단체대표자대회(소위 남북협상)는 好不好간에 후일 조선의 독립사상 한 페이지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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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남북협상에서 귀경후 ×월 ×일, 모 당 ××위원회를 통과한 일부이며 익명 외 첨삭이 없음을 부언하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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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 교사 정면에 붙여놓은 거대한 김일성 초상과 스탈린 초상이다. ....... ]


[ ..... 쾅쾅 때려 부셔라! 쾅쾅 때려 부셔라! ....... ]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6>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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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인민재판이 시작되고 돌과 죽창으로 사람을 때려죽이고 찔러 죽이는 증오와 원한의 피투성이 보복이 되풀이되었다.


밤낮으로 폭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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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이모들은 비행기만 나타났다하면 대낮에도 구석에 포개둔 이불속에 머리만 틀어박고 온몸은 훤히 드러낸 채로 덜덜덜 떠는 데에 똑같았고, 꿩이 그렇다던가,


큰집에선 반대로 옥살이 할아버지가 마당까지 일부러 나와 비행기를 쳐다보며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들을 수 있기라도 하듯이 주먹을 휘두르며 쾅쾅 때려 부셔라! 쾅쾅 때려 부셔라! 소리소리 지르셨다. 사랑하는 문태 숙부가 잡혀가 숱한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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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나가면 친공적 교사들의 지휘통솔 하에 학교 운동장을 빙빙 돌며 행군하는 것이 다였다. 그 때마다 노래를 불렀는데 기억나는 것은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이란 김일성 노래와 학교 교사 정면에 붙여놓은 거대한 김일성 초상과 스탈린 초상이다. 새파랗게 젊은 김일성을 원수님이라 부르는 것도 이상했지만 코쟁이 스탈린을 대원수님이라고 부르라 하는 건 더욱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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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8.28.


[ ...... 영정 사진을 모시듯 받쳐들고 울면서 다시 버스에 올랐다 ........ ]



北응원단 "장군님 사진을 비 맞히다니…"


예천~대구서 플래카드 회수소동
사진 위로 접어 마치 영정모시듯



대구=금원섭기자

2003.08.28




북한 응원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들어간 플래카드가 비에 젖은 채 도로변 가로수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 “장군님 사진을 이런 곳에 둘 수 있느냐”며 울면서 플래카드를 걷어 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28일 오후 1시40분쯤 북한 응원단 150여명은 경북 예천군 진호국제양궁장에서 응원을 마친 후 버스를 타고 대구로 출발하던 중 양궁장 입구 등에서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이 든 플래카드를 발견했다. 플래카드에는 사진과 함께 ‘북녘동포 여러분 반갑습니다’(예천 농민회)라는 등의 환영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곳에는 지난 22일부터 세로 90㎝, 가로 6m 크기의 플래카드 14장이 도로변 가로수 2m 높이에 걸려 있었다.


버스 6대에 나눠탄 북한 응원단은 플래카드를 보고 일단 지나갔다가 갑자기 버스를 세웠으며, 여러 대의 버스에서 30~40명이 내려 300~500m 거리를 되돌아 달려 왔다. 이들은 “장군님 사진 위에 검인을 찍어놓다니 이럴 수 있느냐” “장군님 사진을 어떻게 이토록 비바람 속에 놔둘 수 있느냐” “장군님 사진을 왜 이렇게 낮게 걸어 놓았느냐”고 강력히 항의했다.


이들은 이어 서로 몸을 밀어올려 플래카드가 걸려 있던 가로수에 기어 올라가 노끈으로 묶여 있던 플래카드 4개를 걷어냈다. 이들 중 일부는 김 위원장의 사진 부분이 앞으로 오게 플래카드를 접어 마치 영정 사진을 모시듯 받쳐들고 울면서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현장을 취재하던 경북매일신문 정후섭 기자가 북한 응원단 10여명에게 카메라를 빼앗겼다.


경찰 관계자는 “북한 응원단원 중 일부는 마치 남편 잃은 여자가 상갓집에서 오열하는 것처럼 큰소리로 울며 버스에 올랐다”며 “주변에서 지켜보는 주민들이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소름이 끼칠 정도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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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4.


[ ..... “의장님과 함께라면 죽음조차 감미롭다.”

“의장님과 함께 요람에서 죽음까지 늘 함께 하자.” ........

..... “백만학도 뿐만 아니라 4천만겨레의 지도자이신…” ........ ]



“의장님 영도 따라” 전대협5기 출범의장에 한양대 김종식군…‘겨레의 지도자’호칭 등 충성경쟁



한종호 기자 | 1991.04.25 |78호



4월12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제5기 대의원총회 마지막날 행사가 열리고 있던 연세대 백주년기념관내 콘서트홀, 제5기 전대협 의장 선출을 파두고 대회는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점심식사를 마친 대의원들이 하나둘 대회장으로 입장하는 동안, 단상에는 몇몇 대학생들이 율동에 맞춰 새로 개발한 구호를 외쳤다. “의장님과 함께라면 죽음조차 감미롭다.” “의장님과 함께 요람에서 죽음까지 늘 함께 하자.” 학생들의 단순한 치기로 보아넘기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이어 전대협 8개 지역 27개 지구 대위원이 4~5명씩 단상으로 나와 ‘의장님을 어떠한 자세와 태도로 옹립할 것인지’에 대한 결의를 구호와 노래로 발표했다.

잠시후 총회 경호를 맡은 사수대원 1천2백여명이 12명의 ‘중대장’ 통제하에 일사불란하게 행사장을 가득 채우자 본행사가 시작됐다. 이때부터 분위기는 진지해졌다.



단독 입후보한 金種植(24) 전대협 임시의장 겸 한양대 총학생회장은 “전대협이 한번 맘먹으면 못할 게 없다”며 “통일조국 건설을 향한 힘찬 구국투쟁을 선포하자”고 기염을 토했다. 김후보가 입장하고 퇴장할 때마다 모든 참석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전대협 찬가’를 부르고 열띤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약 60명으로 구성된 대학신문·방송 기자단도 일반 보도진과 함께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소견발표가 끝나자 중앙위원들이 일어나 “의장님의 영도 따라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힘차게 안아오자”며 다시 한번 결의를 과시했다. 뒤이어 ‘의장님을 우러러보네’라는 노래를 다같이 불렀다. ‘의장님 우러러보네’가 4번 이어지는 후렴은 8차례나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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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의장 칭호 앞에는 으레 “백만학도 뿐만 아니라 4천만겨레의 지도자이신…” “조직과 사상의 구심…” 등 화려한 수사가 붙어 일정한 편향을 내보였다. 한 대위원은 “의장님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따르겠습니다”고 말해 납득키 어려운 ‘충성경쟁’을 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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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04-25






[ .... “백만 학도뿐 아니라 4천만 겨레의 지도자이신” ......

..... “의장님의 영도따라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안아오자” ....... ]




앞길의 큰 변수 ‘수령론 도입’


국민 ‘생리적 반감’ 벽 넘기 어려워…PD측 “학생운동 반지성적으로 흐를 것” 맹공


[86호] 1991년 06월 20일 (목) 문정우 기자



전대협 의장은 왜 ‘의장님’인가. 어째서 의장 칭호 앞에는 “백만 학도뿐 아니라 4천만 겨레의 지도자이신”이나 “조직과 사상의 구심”이란 요란한 수식어가 붙는가. 의장이 등장하면 모든 학생이 기립해 “의장님의 영도따라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안아오자”고 외치며 경의를 표하고 여학생들은 의장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려고 야단법석을 피우는 까닭은 무엇인가.


또 언론이 빈정거릴 것이 뻔하며, 그들이 중시해온 ‘대중의 정서’와 거리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텐데도 전대협 지도부를 무슨 생각으로 전대협 행사가 열릴 때마다 북한 선전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을 매번 연출하는 것일까.


운동권내의 민중민주혁명론(PD) 계열에서는 그같은 경향은 민족해방혁명론(NL) 계열이 추종하는 주체사상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PD 이론가인 ㅈ씨는 전대협이 NL계열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두가지 해석을 내린다.


우선 주사파가 매우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게 아닌가 보고 있다. 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절정에 올랐던 NL에 대한 학생대중의 지지열기가 대통령선거 및 총선투쟁의 실패 이후 날이 갈수록 식어가고 있어 전대협 지도부를 초조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부조직을 보다 강고하게 결속시키기 위해 주체사상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수령론’을 조직관리에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고도의 ‘대중교육’ 전술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동안 ‘북한 바로 알기 운동’ 등을 벌이며 북한에 대한 남한사회의 ‘금기’를 깨뜨리는 데 주력해온 전대협이 마지막 ‘금기’를 깨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금기란 북한의 유일체제에 대한 남한대중의 반감을 말한다. 즉 전대협은 그들 내부조직을 ‘유일체제’ 식으로 운영함으로써 북한체제에 대한 뿌리 깊은 대중의 혐오감을 둔화시키려 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전대협측의 주장은 사뭇 다르다. 한양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 안재홍군(신문방송학과 4)은 “전대협 의장님의 권위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전대협을 대표하는 분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이 합해져 저절로 생겨난 것이다. 해방 이후 전대협만큼 탄압을 이겨내며 치열하게 싸워온 조직이 어디 있는가. 전대협 의장님은 존경받을 만하다. 나는 ‘수령론’인지 뭔지는 알지 못하지만 의장님에 대해 경의를 표할 때 조금도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의장님께 경의 표할 때 거부감 없다”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이인영씨(전민련 정책위원)는 “우리나라도 그렇고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기념식장에 들어오면 모두 기립해 박수를 친다. 그렇다면 그것도 주체사상의 역설적 표현인가. 전대협 의장에 대한 학생들의 예우도 의전적인 것일 뿐이다. 전대협이 학생대중 속으로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역대 의장들이 학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의장에 대한 학생들의 존경과 신망이 두터워진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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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792






[ .... 찬란한 조명 아래 ‘7선녀’라는 운동권 여학생이 등장하면서 유유히 등장했다” ....... ]


[ ..... ‘브레이크 없는 폭주하는 기관차’ ....... ]



임종석 은사 맹주성 교수, “자네들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일침

"현 정권 방향, 북이 주장하는 연방제 가기위한 수순으로 보여"



이영란 기자

승인 2017.07.18



[시민일보=이영란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에 386세대 총학생회장 출신 인사들이 속속 포진하고 있는 가운데 18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학창시절 은사의 신랄한 '일침'이 화제가 되고 있다.


실제 맹주성 한양대 명예교수는 전날 임종석 비서실장의 한양대 재학 당시 전대협 활동 모습을 술회하면서 현정권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기면서 삽시간에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맹 교수는 이날 '대통령 비서실장 임종석 군에게' 제하의 글에서 “나는 자네가 수업은 한 시간도 안 들어가고 전대협(전국대학생협의회)에서 데모를 주도할 때 그리고 마침내 전대협 의장으로 옹립(운동권의 표현) 될 때 교무처장이었지”라며 “지명 수배 상태였던 자네는 찬란한 조명 아래 ‘7선녀’라는 운동권 여학생이 등장하면서 유유히 등장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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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운동권 학생들이 처음엔 눈을 부라리며 덤벼들더니 사회 반응이 안 좋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일제히 공손한 척하면서 인사하는 모습으로 일제히 바뀌지 않았느냐”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맹 교수는 또 “(임 실장이 당시) 북이 그렇게 좋으면 그곳에 가서 살면 되지 왜 이곳에서 야단인가 하니까, 첫해엔 답변을 못하더니 다음해부터는 ‘아닙니다, 이곳에 남아 민중을 해방시켜야 합니다’라고 했다"며 "각 대학마다 일사불란하게 하는 통일된 언행에 소름이 끼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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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맹 교수는 “자네 김정일이 죽었을 때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를 애도한다는 내용을 북에 보내지 않았나? 그리고 북으로부터 계속 투쟁하라는 답을 받지 않았나?”라며 “이제 자네 세력들이 이 나라를 장악했으니 최종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군”이라고 냉소를 보였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현 정권에서 진행하고 있는 방향이 나의 눈에는 최종 목표인 북에서 주장하는 연방제로 가기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고 비치네”라면서 “자네가 학생일 시절에는 나는 ‘운동권은 브레이크 없는 전차’라고 표현 했는데 지금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하는 기관차’라 표현하네. 내 말이 틀렸나 지금까지 이 나라를 유지해 온 정체성을 모조리 뒤엎어 버리고자 법 위에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386 운동권이 다수인 청와대 비서실 인선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SNS에서 (청와대 비서실 인선)명단을 상세히 보았다"며 “자네와 같이하던 학생회장 또는 학생회 임원들로 깔아버린 그 명단에는 소위 국내 명문대학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자네들의 뜻대로 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게”라고 일침을 가했다.



청와대 ‘캐비닛 문건’사건에 대해서도 “학창 시절부터 법을 어기는 짓을 밥 먹듯 하였으니 지금의 자네에겐 위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을 법도 하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맹 교수는 “한번 따져보자"며 "대통령의 기록물이 아니라는 미명하에 문서를 검찰에 넘겼는데, 이 것은 엄연히 헌법 위반”이라며 “첫째 대통령의 기록물이 아니라면 주인에게 돌려주었어야 할 문서 아니던가? 둘째 대통령 기록물이라면 보관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셋째 법원의 요청이 있었다면 법원에 제출해야지 왜 특검에 넘겼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어“무슨 의도로 이런 치졸한 짓을 하는지 누구나 짐작 할 수 있다"며 "이런 짓으로 진실을 가릴 수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리석은 짓 당장 멈추게”라고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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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8일 현재 청와대에는 전대협 의장 출신의 임종석 비서실장(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을 비롯해 ▲백원우 민정비서관(전대협 연대사업국장 출신) ▲한병도 정무비서관 (원광대 총학생회장 출신) ▲유행렬 자치분권비서관(충북대 총학생회장 출신) ▲윤건영 국정상황실장(국민대 총학생회장 출신) ▲송인배 제1부속실장(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 ▲유송화 제2부속실장(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전북대 총학생회장 출신) ▲김금옥 시민사회비서관 (전북대 총여학생회장 출신) ▲문대림 제도개선비서관(제주대 사회과학대 학생회장 출신) ▲권혁기 춘추관장(국민대 총학생회장 출신) ▲여준성 사회수석실 행정관(상지대 총학생회장 출신) 등 386 운동권 세대들이 586세대가 되어 근무 중이다.


http://www.simi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2709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 속에 담긴 80년대의 초상

80년대 학생운동, 나치즘, 그리고 대중집회




이준석(pennink)

200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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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시대(19933-1945) 독일 영화의 귀재는 단연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이다. 특히 '의지의 승리'는 히틀러에게 바쳐진 걸작 다큐멘터리로 인정받고 있다.

바로 이 영화-'의지의 승리'를 보기 위해 나와 후배는 어제(5월 29일) 독일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서강대 인문관으로 올라갔다. 영화가 상영되는 강의실에는 몇명의 사람들만이 있었는데, 한 독일인이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 대해서 한국 학생과 토론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의지의 승리'속에는 나치즘에 환호하는 거대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히틀러에 열광하는 군중의 규모와 그 환호 소리는 영화를 바라보고 있는 관중을 압도할 만하다. 열정적인 연설, 멋진 차림새, 강렬한 눈빛,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굳게 다문 입. 영화 속 히틀러는 1차 대전 직후 패배감에 젖은 독일 군중의 혼을 빼버릴 만큼의 매력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군중은 패전 독일을 구원할 수호신으로 히틀러를 믿고 따른다. 열렬하게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나치의 살육과 광기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숭고한 열정과 믿음마저 엿보인다.



그런데 이 흑백 다큐를 보며 내심 감동하고 있다면? 그렇다. 나는 내심 감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80년대의 초상을 쫓고 있었다. 92년 전대협 출범식 전야제였던가?


나는 한양대 대운동장에 운집한 수만(주최측에서는 참가자의 수가 10만이라고 추정)에 이르는 군중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투쟁을 외치며 하늘로 치켜들렸던 팔뚝들. 한밤의 어둠을 태워버리던, 촛불처럼 흔들리던 수만개의 라이터 불빛. 인상적인 문화 공연과 거대한 걸개그림. 군부 독재와 반민주 세력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 청년들. 나는 영화를 보며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대중집회를 떠올리고 있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셀 수 없는 군인들이 사열한 가운데 히틀러가 등장한다. 강한 군대. 나치가 자랑하는 수십만, 혹은 수백만의 군인들이 자로 잰 듯 집결하여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경례를 올린다.

"하일 히틀러(히틀러 만세)!"

"우와"


그들의 열기와 위세에 나는 나도 모르게 환호하였다. 함께 영화를 관람하던 후배 역시 연신 탄성을 질렀는데, 영화 도중에 밖으로 빠져나가던 독일인이 우리에게 한마디 했다.

"No Admire!"



경배하지 말라고? 경배하지 말라니?
나는 스스로를 변명하였다. '저 사람 뭘 잘못 이해했군. 우린 나치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랑스런 80년대에 고개 숙였을 뿐이야.'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다시 생각했을 때, 나는 어쩌면 그의 말이 옳았을지 모른다고 쓰리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나치즘과 80년대 학생운동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치와 그 지지자들-그들도 그렇게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대의명분에 숭고한(?) 열정을 바쳤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담겨진 그릇의 내용물만 달랐을뿐 우리 역시 똑같은 파시스트가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랬기에 우리는 현재 '386'이라고 불리는, 각종 학생회장과 의장들을 경배하였던 것이다(의장님 우러러보네!). 그랬기에 우리는 화려하게 다시 나타난 그들을 다시 경배하였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들은(권력의 피라미드- 그 정점에 올라선 파시스트라고 말하면 심한 것일까?) 5.18에 술판을 벌일만큼 오만하였던 것이다. 그랬기에 시민 운동가는 어린 여대생을 추행할 만큼 방자하였던 것이다!



거대한 규모의 대중 집회? 간부 중심주의? 불패의 애국 대오?

어쩌면 앞으로 나는 내 20대의 삶이 부끄러웠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앞으로 나는 내가 일개 파시스트 당원에 불과하였다고 고백할지도 모르겠다.


아! 5월은 간다. 부끄럽게도 5월은 간다.


2000-05-30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0009129







2000.8.


[ ..... 칠흑같은 어둠을 밝히는 라이터 파도. ........

..... 스스로가 만든 집단예술에 감동하며 사람들은 점점 하나가 되어 갔다. ........ ]



미리 가보는 통일대축전 2 - 통일문화한마당

7천만 겨레여! 노래하자! 춤추자! 자주 통일조국을!



범기영(bum710) 기자



(이 기사는 남북공동선언 관철과 민족의 자주 대단결을 위한 2000년 통일 대축전 남측준비위원회가 발표한 통일 대축전 세부 기획안에 따라 통일대축전 현장을 가상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 편집자)


13일 저녁 한양대 노천극장. 수만명의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하지만 그곳에는 혼란은 없다. 오직 통일을 향한 타오르는 염원이 있을 뿐. 눈부신 조명 속에 빛나는 사람들의 눈길로 그렇게 통일의 새벽은 밝아오고 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박수와 함성으로 통일문화한마당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개막선언에 맟춰 장내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꺼진다. 칠흑같은 어둠을 밝히는 라이터 파도. 라이터가 없으면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액정으로라도 어둠을 쫓는다. 이 땅을 55년간 덮은 분단을, 그 죽음의 장막을 걷어낸다.


한쪽에서 연신 눈물을 닦는 사람이 있다.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96년 연세대에서의 죽음을 무릅쓴 항쟁, 97년 조선대에서 500여명이 모여 치른 범민족대회를 넘어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당당하게 통일을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이제 겨레의 도도한 통일대행진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95년부터 매년 8월 범민족대회와 함께 했다는 직장인 최모씨는 감격에 겨워했다.


그렇게 스스로가 만든 집단예술에 감동하며 사람들은 점점 하나가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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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1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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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5. 2차 민중총궐기 대회



[ ..... 문재인, 이종걸, 심상정 등 수십 명의 야당 국회의원이 ‘떼’로 ........ ]



[ ...... 공권력을 조롱하는 가면과 ‘대통령 처형’ 문구가 ....... ]

[ ..... “병신년(丙申年), 박근혜는 물러나라” ...... ]

[ ...... “세상을 뒤집겠다” ........ ]



2015.12.5


새정치 27명-정의당 3명 등 의원 30명, 2차 민중총궐기 참가


“대통령 처형·이석기 석방” 시위 함께한 새정치 패거리

은수미 의원 ‘가면’ 쓰고 등장...행렬 도중 이적단체 전단지 살포



특별취재팀 기자 2015.12.06



쇠파이프와 쇠망치, 철제 사다리와 각목, 복면과 두건은 사라졌다. 그러나 공권력을 조롱하는 가면과 ‘대통령 처형’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이 대신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달 14일 광화문 폭동을 주도한 한상균 민조노총 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는 문재인, 이종걸, 심상정 등 수십 명의 야당 국회의원이 ‘떼’로 메웠다.


노동자와 농민의 생존권 사수를 위해 모였다면서, 뜬금없는 ‘사드(THAAD) 배치 반대-원전(原電) 건설 반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한쪽에서는 대법원 확정판결로 수감 중인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서울 도심 한 귀퉁이에서는 수십 명의 청년들이,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부정하면서’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가위로 자르는, 철딱서니 없는 짓을 벌였다.


2015년 12월 5일,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교조, 한국진보연대 등이 공언한 2차 민중총궐기 대회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열린 본 집회에는 경찰 추산 1만 4천명, 주최 측 추산 4만여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본 집회가 끝난 뒤 농민 백남기씨가 입원 치료 중인 혜화동 서울대병원까지 예정된 시가행진을 벌이면서, 정부와 공권력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쳤다. “박근혜를 처형하라”는 구호가 나오는가 하면, 누군가는 “이석기 석방”을 목 놓아 외쳤다.



“병신년(丙申年), 박근혜는 물러나라” 등의 원색적인 구호와 피켓도 난무했다.


조계사에 숨어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행사 주최 측은 본 집회 시작과 함께 한상균 위원장의 영상메시지를 스크린에 올려, 이날 집회의 배후에 한상균 위원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날 한상균 위원장은 마치 자신이 일제에 맞선 독립투사라도 되는 것처럼, “독재정권의 탄압이 우리의 투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며 군중을 선동했다. 지난달 14일 서울 도심을 폐허로 만든 ‘광화문 폭동’이 정당했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한 위원장의 발언은 시대착오적이었으며, 지난달 14일 폭력시위를 비판하고 있는 국민들의 뜻에도 어긋났다. 그럼에도 광장에 모인 군중은 우상(偶像)의 ‘설교’에 환호로 답했다.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수십 명도 그 자리에 있었다. 이들은 목에 청색 목도리를 두르고 나타나 이날 집회와 행진에 함께 참석했다.


새정치연합 은수미 의원은, 이날 집회를 ‘파티’로 착각한 듯 가면무도회에서나 착용할 법한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집회 현장에서는 제2의 광화문 폭동을 막기 위해 대안으로 제시된, 복면금지법(집시법 개정 법률안)을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상당수의 집회 참가자가 각종 캐릭터 가면을 쓰고 나왔으며, 일부 참가자는 다른 이들에게 하나에 1만원씩 받고 가면을 팔았다.

군중들은 가면을 쓰고 행진하면서, ‘폭력시위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집시법 개정안의 취지를 애써 외면했다. 가면을 쓰고 나타난 은수미 의원 역시 군중들이 벌이는 억지 촌극에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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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 그 어디서도, 지난달 14일 벌어진 ‘광화문 폭동’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어디서도 광화문 폭동으로 부상당한 113명의 의경 및 경찰관들에 대한 위로나 격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평화의 목도리를 두르고 나타난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수십 명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정의당 의원들도, 광분한 폭도들의 폭력으로 부상당한 의경들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들은 폭력시위를 벌이다가 부상당한 농민 한명의 쾌유만을 기원했다.

물리적 폭력은 사라졌지만,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공권력을 조롱하는 속칭 진보의 못된 구태는 이날도 재현됐다.

속칭 진보의 동떨어진 현실인식은 대형 스크린에 등장한 한상균 위원장의 ‘설교’에 그대로 묻어났다.

이날 한상균 위원장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11월 14일 우리 민중들의 투쟁은 너무나 정당했다”고 운을 뗐다. 광화문 폭동의 잔혹성을 폭로한 동영상과 사진을 접한 60% 이상의 국민들이, 당시 시위를 비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상균 위원장은 이런 국민의 뜻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러면서 한상균 위원장은 “오늘 우리가 잠깐의 탄압을 받을지언정, 폭력적 독재정권이 결코 우리의 투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며, 군중을 선동했다.

이어 한상균 위원장은 “제가 있는 곳이 조계사든 감옥이든 투쟁 현장이든, 이 시대가 저에게 부여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밝힌다”고 했다.

특히 한상균 위원장은 "오늘 2차 민중총궐기가 더 큰 민중의 항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으로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작성일:2020-02-03 20:02:44 211.169.1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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