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왜 한국을 떠났나?

이소연은 2008년 한국인 최초로 우주인이 되었다. 이소연은 그러다가 국내 우주연구소를 퇴사했다. 이소연에 따르면 당시 미국에서 결혼생활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는데...

처음 우주인으로 선발됐던 고산 씨는 훈련 과정 규정 위반으로 탈락하면서 이소연 박사가 우주선 발사를 한 달 남기고 탑승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이소연은 러시아 소유즈 로켓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10일간 머물면서 18가지 우주실험을 진행했다. 후에 이소연은 항우연 선임연구원으로 2년간의 의무 복무를 끝냈다. 이소연 박사는 2012년 8월 휴직을 한 다음에 갑자기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이소연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소연은 2008년 3만 6천 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한국인 최초 우주 비행에 탑승한 인물로 유명하다.
이소연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소연은 2008년 3만 6천 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한국인 최초 우주 비행에 탑승한 인물로 유명하다.

이소연은 2013년에는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한 한 다음 미국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소연은 정부가 260억 원을 들여 추진한 우주인 배출사업의 주인공이다. 근데 이소연은왜 MBA 학위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을까?

이소연은 과거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어떤 계획이든지 가족이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소연은 공대 대학원생으로서 우주에서 실험을 한다면 정말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우주인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런 이소연이 항우연 선임연구원이 되고 나서 보니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환경이 많이 달랐던 것이다. 이소연은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의 한계를 깨달았으며 정부 정책과 예산 결정 과정 등을 알고 난 뒤 현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소연은 최근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 공대 자문위원 자격으로 학생들의 연구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소연은 실리콘밸리에 있는 인공위성 스타트업 기업에서 일하며 종종 강연도 한다고 전해진다.

이소연 박사는 과학잡지 ‘에피’ 3월호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했다. 이소연은 2008년 4월 8일부터 19일까지 10일간 러시아 소유즈 TMA-12호를 타고 우주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소연의 처음 기대와는 많이 달랐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소연은 우주에 있을 때조차 후속사업이 없는지 몰랐다고 고백했다. 이소연은 우주에서 귀환하여 우주인 사업이 3년 정도의 단기 사업이고 후속 계획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허탈했다고 전했다.

이소연은 국내의 열악한 환경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귀환 후 우주정거장에서 본인이 가지고 온 실험결과를 분석하는 예산 확보를 위해 우주과학팀이 일을 진행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이소연... 그때의 허망함은 말을 하기가... 그런 상황에서 욱한 것 반, 먼 미래를 계획한 것 반의 이유로 결국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소연은 우주인 배출 사업이 한국의 우주과학을 발전시키려는 목표가 있었다면 후속 사업도 없고 후속 실험도 안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소연은 정책 설계가 부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소연에 따르면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하여) 정책 설계자와 정책 수행자가 바뀌었다. 따라서 (우주인 배출 사업에 대한) 목표와 방향이 달라졌던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소연은 과거에 세계 49번째 여성 우주인이 되었고, 아시아에서는 1998년 일본 무카이 치아키씨에 이어 두 번째로 여성 우주인이 되어 많은 화제가 되었다. 한국 최초 우주인 배출사업에는 3년 동안 256억 원이 투입되었으나 이소연은 우주인 생활을 끝내고 귀환한 다음에 체계적인 우주인 육성이 되지는 못했다. 이소연은 2012년 8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휴직계를 내고 미국으로 갔다. 이때 이소연의 ‘먹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소연이 과학 연구를 하지 않고 개인적 삶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6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소연 박사은 한국인 최초 우주비행 10년을 기념하여 ‘에피’에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이소연은 “우주인 배출 사업이 만들어낸 상품”이라고 자평했다.

과학잡지 ‘에피’에는 이소연이 우주에서 기록했던 일기도 공개되었다. 이소연은 우주에서 멀미와 두통, 소화불량 등을 겪게 되는 이유, 여성 우주인이 생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이소연에게 주어진 우주실험 숙제 등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소연은 또한 정부 부서의 이름이 ‘과학기술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로 바뀌면서 우주정거장에서 우주비행복의 패치를 뜯고 새 부서 이름이 적힌 패치를 바느질했던 경험과 실험장치에 있던 스티커도 새로 붙였던 과거 경험도 소개했다.

[코리아프레스 = 임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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