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판결문

[코리아프레스 = 박귀성 기자] 연세대학교 마광수 전 교수가 별세했다. 마광수 교수가 사라를 남기고 별세한 거다. 마광수 교수 하면 많은 이들이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를 연상한다. 마광수 전 연세대학교 교수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자살로 보인다. 마광수 교수의 이승 마지막 장소엔 유서도 발견됐다.

마광수 교수의 과거 판결문을 보면 마광수 교수가 어느 정도 보인다. 마광수 교수가 송사에 얽히게 된 마광수 교수 친저 ‘즐거운 사라’에 대해 1심 법원은 “소설 ‘즐거운 사라’는 때와 장소, 상대방을 가리지 않은 각종의 난잡하고 변태적인 성행위를 선동적인 필치로 노골적,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다가 나아가 그러한 묘사부분이 양적, 질적으로 문서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이나 전개에 있어서도 문예성,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 완화의 정도가 별로 크지 아니하여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구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 고찰하여 볼 때 위 소설은 문학작품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의 최대한 보장이라는 명제와 오늘날의 개방된 성문화 및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형법 제243조, 제244조에서 말하는 음란한 문서에 해당된다”(마광수 교수 판결문 1992. 12. 28)고 판결했다.

마광수 교수 부음, 마광수 교수가 5일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마광수 교수 향년 66세, 경찰은 마광수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있다.
마광수 교수 부음, 마광수 교수가 5일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마광수 교수 향년 66세, 경찰은 마광수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있다.

마광수 교수 저서 사건 당시 재판부와 검찰은 안경환 서울대 교수와 이태동 서강대 교수를 감정인으로 세웠다. 이들 감정인들은 입을 모아 마광수 교수의 저서에 대해 “‘사라’는 문학작품이 아닌 음란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태동 교수는 “어떤 비정상적인 청소년이 이 책을 읽고 (사라의) 성행위를 반복적으로 실천한다면 범죄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마광수 교수가 피고인이 된 이 재판부는 이들의 증언을 받아들였다. 마광수 교수에게 유죄가 인정됐고, 마광수 교수의 항소심은 기각됐다. 마광수 교수는 이처럼 금기시된 성애 묘사에 대한 불문적 틀을 과감히 깨고 대담한 묘사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갑론을박을 뜨겁게 달궜다.

마광수 교수의 작품들과 지금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들과 성애 표현들을 비교한다 해도 마광수 교수가 압도적일 것 같은 거침없는 묘사였다.

마광수 교수는 자신의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 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고, 마광수 교수의 마지막 장소에는 가족에게 자신의 유산과 시신처리를 당부하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돼 경찰은 마광수 전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마광수 교수는 애초 윤동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28살에 홍익대 교수로 처음 강단에 서는 등 ‘천재’로 불리며 1984년부터는 모교인 연세대에 부임했다. 마광수 교수는 하지만 1992년 발표한 마광수 교수 저작의 소설 ‘즐거운 사라’의 외설 파동으로 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연세대에서는 제명을 당했다 복직하는 등 마광수 교수만의 험난한 인생 굴곡을 겪기도 했다.

마광수 교수는 결국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으로 우울증을 얻었고, 이후 마광수 교수는 지속적으로 정신과 치료와 약을 복용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직과 복직, 휴직을 반복한 마광수 전 교수는 연세대에서 지난 2016년 8월에 정년퇴임했고 이후 창작활동을 계속해왔지만 우울증을 떨쳐내지 못하고 향년 66세의 나이로 이승을 떠났다.

문학계 일각에선 마광수 교수가 전통적인 도덕관념에 도전장을 내미는 거침없는 성애 묘사로 보수적 울타리에 갖힌 문단에 표현의 충격파를 던졌다는 평가도 있다. 마광수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는 1992년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 구속되고, 해직과 복직, 휴직을 반복하며 교수 자리를 잃을 뻔한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마광수 교수는 각종 사회적 논란으로 인해 과거에도 이미 자살 시도를 했을 정도로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지난 1992년 마광수 교수가 음란 소설을 썼다는 혐의로 현직 대학교수 신분으로서 강의실에서 긴급 체포를 당했다. 마광수 교수 사건은 국내외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을 것은 당연지사였다. 마광수 교수는 훗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외신에서 아주 많이 보도가 됐다. ‘세계에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외설을 이유로 작가를 체포한 최초의 나라가 한국”이라고 주장했다.

마광수 교수는 ‘즐거운 사라’ 등 자신의 저서에 대해 “지금도 성에 대한 담론, 성에 대한 창작을 하는 사람이 저 혼자다. 자연히 왕따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마광수 교수는 이처럼 사회적 통념과 창작 사이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처럼 마광수 교수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사회에 매가톤급 충격을 일으켰고, 마광수 교수 자신도 이승을 떠나는 날까지 정신병원 입원과 정신과 치료 약물 복용으로 삶을 마감하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마광수 교수의 평생 화두는 ‘성’이었다.

저작권자 © 코리아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