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으로 만든 셔츠, 사람들의 신뢰 얻는데 성공

[코리아프레스 = 김세중논설위원]

평범한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듯, 진지하게 일에 몰두하는 셔츠 전문매장 ‘새빌로우’의 최호성 사장.
평범한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듯, 진지하게 일에 몰두하는 셔츠 전문매장 ‘새빌로우’의 최호성 사장.
영국 ‘새빌로우’의 전통 패션은 전 세계 멋쟁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즐겨 입는 클래식 수트와 셔츠, 안경, 포켓 칩, 시계 등의 액세서리는 온라인상을 통해 실시간 전 세계에 퍼져나가고 삽시간에 세계 남성 패션의 유행을 선도한다.

홍대 앞에도 ‘새빌로우(Savile Row)’가 있다. 런던의 그 ‘새빌가(街)’에서 상호를 차용해온 셔츠 전문점 ‘새빌로우’가 자리한 곳은 홍대 앞. 정확히 말하면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 23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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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조그만 이층 매장에서 맞춤 셔츠를 만들어 꽤 이름이 나있는 최호성(40) 사장을 만나기로 하고 찾아간 날은, 공교롭게도 그가 신규매장 오픈 관계로 급하게 부산엘 내려갔다 올라오는 중이어서 잠시 그를 기다리는 동안 매장 안팎을 유심히 살펴볼 수 있었다.

다소 독특한(?) ‘더 모임’이라는 이름의 꽤 잘 지어 놓은 6층 건물 이층에 위치한 그의 매장 발코니에서는 홍대 정문을 오가는 젊은이들을 끝임 없이 볼 수 있는 만큼 몫 좋은 자리였고, 모던하게 인테리어도 잘된 매장 안에는 칼라도 좋고 종류도 다양한 원단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특히 와이셔츠의 소매 끝동을 이르는 커프스의 종류를 가지런히 진열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는데 이는 잠시 후 만날 점주인 최호성 사장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가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scene2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데님 원단에 흰색 앵커무늬로 자수를 놓은 반바지 차림에 기타를 들러 멘 최호성 사장이 나타났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성공한 젊은 창업인 등으로 소개된 바 있고, 이곳에 오기 전 블로그 등을 통해 얼굴을 익혀 온 터라 쉽게 그가 최호성 사장인줄 알 수 있었다.

블로그에 올려놓은 모델 같은 스튜디오 사진과,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친구니 꽤 폼 나게 차려입고 나타나겠지…, 미루어 했던 짐작을 무색케 할 만큼 그는 방금 야영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보이스카웃 단원처럼 다소 평범한 복장에 해맑은 미소를 띠며 겸연쩍게 인사를 했다.

새빌로우 홍대점은 주로 20~30대 남성을 대상으로 드레스 셔츠, 캐주얼 셔츠 등을 제작·판매하는 맞춤셔츠 전문점이다. 기존 양복점과는 이미지가 전혀 다른 이곳에서는 고급품을 일반 대중이 비교적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최호성 사장의 매스티지(Masstige) 셔츠가 히트를 치고 있다. 이곳에서 맞춤·제작되는 셔츠의 가격은 6만원에서 15만원 사이로 평균가격은 7만5000원 정도. 가격만 놓고 따지면 명품 셔츠와 패스트 패션 사이에 있는 것이 분명한 곳이지만, 기성복보다 값져 보이고, 명품 브랜드보다 합리적인 셔츠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매장을 직접 방문하거나 온라인상으로 주문이 이어져 최호성 사장은 대화 중간 중간에도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 scene3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최사장은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졸업 후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뭐 하나 마뜩하게 마음에 들어오는 일이 없어 방황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친구 형님이 운영하는 셔츠 매장에서 일을 돕게 되었고, 그 일을 하며 막연하게 ‘옷 만드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그곳에서 얼마간 셔츠 만드는 일과 판매에 대한 노하우를 익힌 그는, 자신의 진로와 꿈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2007년 신사복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진 영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셔츠 만드는 기술을 더욱 견고히 했고, 영국의 마케팅 기법을 벤치마킹하기에 이른다.

“목적이 분명했으니까요. 기술이야 우리가 훨씬 낫지만 디자인이라던지,매장 운영에 관한 판매방식이라던지 배울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가 위주인 국내 맞춤복 시장에 비하면 영국은 그야말로 별천지더라구요. 우선은 원단에서부터 칼라와 문양, 패턴을 활용하는 안목이 완전히 달랐어요. 셔츠 가게 앞에 보디가드들이 지키고 서 있는 가운데 유명인사들이 줄을 서는 것도, 셔츠도 한 벌을 맞추고 사가는 게 아니라 여섯 벌 일곱 벌 우리 돈 100만원 정도에 한 세트씩 사가는 거라든지…, 아무튼 정말 대단했어요.”

그는 6개월 여 동안 영국에 체류하며 그들의 신사복 문화를 빠르게 보고 배웠다. 그러는 한편 함께 간 아내와 함께 밤으론 ‘이것을 한국에 어떻게 적용할 것이 좋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2008년 서울 광화문 지하상가에 7평 규모로 셔츠 전문점 ‘새빌로우(SAVILEROW)’의 매장 문을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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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다녔어요. 조금이라도 좋은 원단을 찾기 위해 시장을 발빠르게 뒤지고 다녔고, 항상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일주일의 반은 밤샘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을 제가 직접 발로 뛰어야 제대로 된 셔츠를 완성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시장에 나가면 모르는 것을 묻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려 노력했어요. 외국의 패션 잡지들을 밤새워 보면서 그대로 따라해 본 것도 부지기수고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니 손님들도 조금씩 제 열정을 알아주시고 제게 신뢰를 보내주시더라구요.”

그는 일반적인 양복점처럼 같은 상가나 같은 동네로 상권 범위를 스스로 한정 짓고 고객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인터넷을 통한 홍보와 배송 서비스를 통해 외연을 확장해 나갔다. 덕분인지 지금도 인터넷 검색창에 ‘새빌로우’를 입력하면 그가 만든 블로그와 그동안 새빌로우를 다녀간 고객들이 올린 수많은 카페와 블로그 글들을 쉽게 찾아 볼 수가 있다.

“새빌로우가 이렇게 빨리 자리 잡게 된 요인은 고급화 전략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인터넷 마케팅의 덕이었어요.인터넷 마케팅은 인터넷 상에서의 마케팅 뿐 아니라 이메일과 무선 매체 등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 범위가 광범위했거든요. 인터넷 마케팅은 디자인, 개발, 광고 및 영업 등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저를 도와 준거지요.”

최 사장은 2030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선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은 필수라고 말한다. 지금도 그의 블로그에는 고객뿐만 아니라 그를 벤치마킹하려는 다른 맞춤복 디자이너들과 점장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그와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하루에도 서너명씩 매장을 운영하고 싶다며 프랜차이즈 제안을 해오기도 한다.

“매장 수를 더 늘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처음에 비교하면 지금 이 정도도 엄청 성공한 거니까요. 지금은 그저 어떻게 하면 보다 좋은 원단의 옷을 유니크하게 만들어 고객께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새빌로우셔츠가 남성 셔츠의 자존심으로 불리게 될까?… 뭐 그런 고민만 해요. 좋은 원단을 구하는 일, 문양과 패턴을 연구하는 일, 그것만으로도 너무 바쁘고 즐겁고 그렇거든요.”

#scene5

이제 최호성 사장은 창업 8년 만에 월 8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를 버는 강소상인이 됐다. 최사장은 앞으로 매장 확장 대신 ‘옷 입는 문화를 파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그는 저가 이미지로 왜곡된 국내 수제 양복 문화를 한 단계 고급화하는 것이 개인적인 소망이라고 말했다.

장시간 거침없이 쏟아 내는 그의 말이 조금은 호기롭게 들리기도 했지만, 그가 말하는 모든 것들에서 전문성과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더구나 본인의 일을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더 많은 부분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 그가 시간 날때마다 연구하고 배우려는 자세는 시사하는바가 컸다.

최호성 사장은 지금 광화문점을 시작으로 압구정점과 논현동점, 그리고 홍대점까지 네 곳의 새빌로우 매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그는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구정중학교와 영동고등학교를 나온 소위 ‘압구정 키드’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것만은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시는 아버지의 월급으로 삼촌 3명과 고모까지 함께 사는 집안에서 위로는 누나 한 분과 아래로는 남동생이 함께 사는 평범한 집안이었다. 기타도 잘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집안 누구도 그가 이렇게 ‘양복장이’가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도 그는 거기 ‘새빌로우’ 매장에 있다. 자수 놓은 닻 문양의 반바지에 데님 남방을 입고 원단을 들고 뛰거나 줄자를 목에 두르고 재단을 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디자인을 익히기 위해 온갖 패션 잡지를 뒤적이거나, 잠시 틈이 나면 매장 한 켠에 세워둔 기타를 들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그의 기타는 현존 어쿠스틱기타 중 최고라고 평가되고 있는 유명한 기타브랜드 ‘테일러(Taylor)’였다.

“왜 기타가 테일러(Taylor) 제품인 줄 아세요? 원래는 마틴이나 깁슨을 좋아했는데 테일러로 바꿨어요. 똑 같잖아요. 철자는 한자 틀려도 발음이. 테일러(tailor), 재단사, 양복점.… 누가 뭐래도 전 양복장이거든요. 흐흐훗”

천진한 웃음으로 인사를 하는 그의 매장을 나와 홍대 앞 예술의 거리를 걸으며 잊지 않으려 그에게 빠르게 톡을 날렸다. ‘새빌로우를 꿈꾼다는 최호성 사장, 나는 오늘 새빌로우는 이미 그대가 이룬 꿈임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좋은 셔츠도 많이 만드시고, 세상에 유익한 새로운 콘셉트를 계속해서 만드는 멋진 사람으로 남아주길 기대합니다.’…후텁지근하게 찌푸리던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각종 원단과 커프스가 보기 좋게 진열돼 있는 새빌로우 홍대점 내부.
각종 원단과 커프스가 보기 좋게 진열돼 있는 새빌로우 홍대점 내부.

김세중 논설위원 / sjkim@kore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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