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미대 73학번들의 따뜻한 봄소풍, 오는 28일부터
그들이 대학에 입학하던 1973년.
가요계에서는 남진과 나훈아가 등장하면서
오빠부대가 이들의 라이벌전을 부추기는 절정의 해였다.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한국스포츠사상 최초로 한국이 유럽과 중국을 제치고 우승하고, 만5천점에 달하는 방대한 부장품이 출토된 천마총이 발굴되는가 하면, 한국산업의 심장부가 된 포항종합제철공장과 우리나라의 최대 인공호수인 소양강 댐이 준공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석유파동이 한반도를 강타하여 거리의 가로등이 꺼지고 연탄파동까지 일어나 국민들은 한겨울 난방에 어려움을 겪은 해이기도 하다.
또한 그해에는 김대중 납치 사건이 있었고, 중동 전쟁을 계기로 한 석유 파동은 초중고 조기 방학, 선박, 철도, 항공, 버스 등 全교통수단 운행 횟수가 제한되는가 하면, 접객업소 영업 시간 단축 등 큰 우리사회 전체에 큰 여파를 미쳤다. 그리고 10월 2일 서울대 문리대 데모를 시발로 한 민주체제 회복, 자유 보장을 요구하는 학생 데모는 전국의 대학으로 번져 갔다.
그때 그들이 있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의 안내 문구처럼 예술의 조형이론과 기법 역사에 대한 교수연구를 통하여 창조적인 실험정신과, 사회가 요청하는 광범위한 응용정신을 기르고, 문화계의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할 수 있는 미술인과 미술 교육자를 양성하겠다는 거창한 이념 따위는 그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신촌의 변방처럼 여겨졌던 홍대 앞에서 가끔 석탄을 싣고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암울한 시국을 걱정해야 했고, 이름도 정겨운 ‘유정다방’, ‘돌스’와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를 즐겨 틀던 ‘카타리나’ 한켠에 앉아 하루의 끼니와 잠자리를 고민하기도 했다. 재수가 좋은 날에는 친구들을 따라 ‘풍년분식’이며 이름도 없는 술국집과 섞어찌개집, 동태탕집에서 맛 좋은 저녁과 소주를 한 잔 얻어먹기도 하며 밤새워 미술을 이야기 했다.
일찌감치 아현동 고갯길에 화실을 마련하고 작업에 몰입하는 학우들이 있었는가 하면, 홍대 뒷산인 와우산에 땅굴을 파고 지내는 학우들은 미성소주공장(지금의 학교앞 서교 아파트자리) 아저씨 얼굴 스케치 한장 해주고 댓병 소주를 얻어 마시며 먼훗날 이 땅의 이름있는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모두가 가난했고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1970년대는 지나갔다.
더러는 미술과 관련 없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전업작가가 되거나, 전공을 살려 작품 활동을 하며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유명 교수가 되기도 했다.
그들이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다.
여미갤러리 ‘소풍-with Remember 1973’展.
옛 소풍날의 두근거리는 마음처럼 세월은 흘렀어도 결코 변치 않는 우정과 열정의 한 자락을 그들은 빛바랜 앨범을 꺼내어 들여다보듯 조심스럽게 펼쳐 보인다. 더러는 덜컹거리는 완행열차 시절의 MT의 추억과 낭만이 녹아있는 축제의 그날을 회상하기도 하고, 그 지난한 세월을 지나 오늘에 이른 자신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꺼내들었다.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며 한국 판화 미술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한 구자현(판화작가), 대학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며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강윤성(시각디자인, 경기대 시각정보디자인학과 교수), 문철(시각디자인, 홍익대 디자인학부 교수), 정경연(섬유미술,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 원경환(도자기공예, 홍익대 도예유리과 교수), 홍경희(금속공예, 홍익대 금속공예디자인과 교수), 정주현(운송기기디자인, 홍익대 디자인학부 교수), 박영란(색채,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겸임교수), 원유홍(그래픽 디자인, 상명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한기웅(산업디자인, 강원대 디자인학과 교수), 전두선(공업디자인, 한밭대 공업디자인학과 교수), 서기흔(시각디자인, 가천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김종환(사진, 링크아트 대표), 노혜경(섬유미술, 전 삼보직물 디자인이사), 이주헌(그래픽, 동부그룹 이사), 이희순(목공예, PNB TRADING CO.LTD 대표), 조선희(시각디자인, 여미갤러리 관장), 곱상하고 참한 외모로 학창시절부터 데뷔 후인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옛 시인의 노래’를 부른 가수 한경애(섬유미술).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추억은 어제 일처럼 또렷한 중년의 그들이 오는 28일(토)부터 4월 11일까지 학창시절 ‘깜씨’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조선희관장이 운영하는 여미갤러리에 모이는 것이다.
얼핏 보면 그렇고 그런 미대 동기들의 작품 전시회쯤으로 생각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 이상이다. 그들은 이미 한국 미술계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중진 작가들로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고, 미술계 저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들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감상(鑑賞)이 주된 목적이 아닌, 실용성이나 유용성에 근거를 둔 미술 작품들이 많이 선보이게 될 것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격동의 세월과 치열한 삶을 살아온 홍익대 미대 73학번 동기생들의 이색 전시. 전시는 봄소풍의 설레임처럼 그들이 갖는 소리 없는 추억과 관계의 따뜻함을 넘어, 그들의 모교인 홍익대가 왜 대한민국의 미술 인재를 배출해 내는 산실(産室)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줄 것이다. 봄나들이하기 좋은 아주 따뜻한 3월 말의 여미리에서.
김세중 논설위원 / sjkim@kore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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