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실 때도 애국가 1절부터 4절까지 다 부르고 가셨다"

[코리아프레스 = 김유진 기자] 6·25 한국전쟁 당시 정전·평화 운동을 벌이던 중 이적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한 독립운동가 고(故) 최능진 선생의 아들 최만립(81)씨가 선친의 결백을 호소하고 나섰다.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부장판사 최창영) 심리로 열린 故 최씨에 대한 재심사건 1차 심문기일에 출석한 만립씨는 "형님이 돌아가시면서 '아버지 명예를 회복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며 "선친은 이승만과 싸운 죄밖에 없다"고 억울해했다.
 
그의 형은 고(故)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알려져 있다.
 
만립씨는 "선친은 한국전쟁 때 평화통일을 주장했을 뿐"이라며 "선친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정치적으로 가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다 부르고 돌아가신 거로 알고 있다"고 선친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민간인을 군사법정에 세워서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느냐"며 "정치적 테러로 돌아가신 선친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립씨는 이날 친필로 쓴 진정서를 법정에 제출하기도 했다.
 
한편 고(故) 최능진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해방 직후 당시 소련의 탄압을 피해 월남해 미군정에 의해 경무부 수사국장에 임명됐다. 그러나 이듬해인 1946년 친일 경찰 척결을 시도하다 경찰 간부직을 내놓아야 했다.
 
이후 1948년 5·10 총선거에 출마해 같은 선거구에 출마한 이승만의 '정적'으로 부각됐지만 선거 이틀 전 추천인 날인 위조 혐의로 입후보 등록을 취소당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에는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했다는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감방에 갇혔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인민군의 정치범 사면 때 풀려난 그는 서울에서 정전·평화 운동을 벌이다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돼 사형을 선고받고 1951년 2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차 심문은 다음달 1일 오전 11시20분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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