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프레스 = 조희선 기자]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지난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불황형 흑자'의 그림자는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기록적 경상수지 흑자는 수출 호조에 힘입은 것이 아니라 국제유가 하락, 내수 부진으로 수입이 감소한 데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실속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가 위축돼 수입이 줄었는데, 수출 전선도 불안한 모습이다.
 
수출 증가율은 2년째 2%대 낮은 수준을 유지하다 지난해 급기야 0%대로 떨어졌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경상수지는 894억2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연간 경상수지는 2012년부터 3년 연속 최대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기록적 흑자 행진이 수출 호조로 달성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수출은 6215억달러로 0.5%(전년 대비)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딛고 2010년 27.4%, 2011년 26.6% 늘어난 수출은 2012년 2.8%, 2013년 2.4%로 증가율이 뚝 떨어졌다. 0%대에 머문 지난해 수출 증가율은 2009년(-15.9%)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기록이 나온 것은 국제유가 급락과 내수 부진으로 수입 감소폭이 두드러진 탓이다.
 
지난해 상품수입은 2287억달러로 전년보다 1.7% 줄었다. 수입은 2012년 -0.7%, 2013년 -3.4% 등 3년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상품수지 흑자가 929억달러로 전년보다 100억달러 이상 급증하면서 경상수지 흑자를 사상 최대치로 끌어올린 것이다.
 
한은과 정부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불황형 흑자' 논란에 계속해서 선을 긋고 있다.
 
최근 수출과 수입이 함께 감소한 것은 맞지만 이는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것으로, 물량 기준으로는 수출·수입이 모두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물량으로 따진 통관 수출은 4.4%, 수입은 4.7% 증가했다.
 
지난달 '2015년 경제전망'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신운 한은 전 조사국장은 "경상수지 확대는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효과"라며 "연간 성장률이 3%대 중반으로 잠재성장률에 부합하는 상황에서의 경상 흑자를 불황형 흑자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노충식 한은 국제수지팀장도 "국제유가는 국내 경기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기 때문에 이로 인한 경상수지 흑자를 '불황형 흑자'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지난달엔 소비재 수입 증가율이 10%를 넘어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저유가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에 유가 하락이 반영된 경상수지 흑자 또한 불황형 흑자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대외수요 감소가 전이돼 유가 하락이 가속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수출이 지속적으로 정체한 가운데 수입 감소 폭이 커진 지금 상황은 전형적 불황형 흑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940억달러로, 작년보다 규모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기 회복세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확대되는 경상 흑자 규모를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은 국내에 대규모로 들어온 달러화가 원화 강세를 불러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관리하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최 부총리는 지난달 26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단과의 간담회에서 "경상수지 흑자가 너무 많으면 환율 절상(원·달러 환율 하락) 압력이 생기기 때문에 올해 흑자 폭을 작년보다 낮은 수준으로 관리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내수 부진으로 수입이 줄어들면 불황형으로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나는 만큼, 내수를 활성화해 경상수지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문제와 경기 불확실성으로 희미해져 버린 유가 하락의 긍정적 효과를 살려내야 불황형 흑자의 부정적 효과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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