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어우를 수 있는 가족오락영화 '국제시장' 이야기

 
 
[코리아프레스 이재훈기자] 예고편을 보면서 우리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영화해 했다는 것을 대번에 눈치 챘다. 제목이 ‘국제시장’이어서 그 당시 달러벌이로 해외에 많이 나갔으니까 국제인력시장에 많은 국민들을 송출한 시기니까 그런 뜻의 국제시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의 말미쯤에서야 비로서 국제시장이 덕수(황정민 역)의 가게, ‘꽃분이네’가 존재했던 시장의 이름임을 깨달았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 관객수 천만명을 앞두고 있다. 3대가 어우를 수 있는 가족오락영화가 대한민국 영화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춥고 배고프고 절박했던 대한민국 전쟁세대의 아들 그리고 손자들이 할아버지 세대를 이해하고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에 감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영화가 바로 ‘국제시장’이다.

이 영화는 관객들을 울리기도 했다가 웃기기도 하면서 관객들의 감정을 떡 주무르듯이 주물러댄다. 덕수와 달구(오달수 역)의 코믹스러운 연기에 박장대소를 하다가도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인생의 고비 고비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독일광부로 파견되었던 덕수와 달구가 광산에 갇쳐 죽음에 직면했을 때 간호사로 파견되었던 영자(김윤진 역)의 목숨을 구해 달라는 눈물겨운 호소는 관객의 마음을 뜨겁게 하기 충분했다. 특히 흥남부두에서 헤어져 30여년 만에 상봉하는 누이와의 만남은 83년도 이산가족찾기의 감동과 기쁨의 눈물을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독일 광부로 파견 나간 덕수가 광산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장면
독일 광부로 파견 나간 덕수가 광산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장면

1950년 12월 15일 흥남부두 철수 사건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삶에 대한 불굴의 의지와 가족을 지켜 내겠다는 굳은 약속을 끝까지 잊지 않으며 살아 온 덕수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광복이 되고 쉴 틈 없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저 살기위한 몸부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왔던 우리의 억세고 당당했던 아버지들. 본인이 죽을 상황이 되어서야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생사조차 모르는, 어디에선가 살아계시기를 바랬던)아버지에게 청원하듯 ‘나 힘들어요’를 중얼거리듯 나지막이 외치던 덕수의 모습에서 한없이 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던 대한민국 장남, 장녀들. 그들은 기꺼이 자신을 버렸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아무도 없는 타지로 외국으로 떠났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광산에서 전쟁터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국땅에서 자신의 젊음을 바치며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다. 그대로 그것이 자신들의 팔자라고 생각해 버렸다. 다 받아들였다.

우리 세대가 보기에는 ‘불가능’ 해 보이는 일을 우리 부모님 세대는 당연하다는 듯 다 해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대부분 무일푼으로 시작해 자수성가(맨손으로 시작해 집사고, 자식들 시집 장가보냈으면 대성공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하신 분들이다. 나의 아버지도 17살 때 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불우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자수성가 대열의 한 분이시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절대 굴하지 않는다. 배짱일까? 갖은 풍파를 다 겪고 나니 웬만한 고난은 작은 불편쯤으로 치부하시는 것 같다.

영화 ‘국제시장’에는 까메오 출연이 극의 재미를 더 해 준다. 맨 손으로 조선소를 짓고 대한민국 첫 자동차 산업을 이끈 현대그룹의 故 정주영 회장, 196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남진이 베트남전의 용감한 군인으로 나오고, 씨름선수의 대명사 이만기가 중학생 시절에 빡빡머리 씨름부원으로 나왔다가 천하장사로 등극하는 장면이 나온다. 느끼한 발음의 디자이너 故김봉남선생, 앙드레 김도 ‘꽃분이네’ 상점에 옷감을 보러 왔다가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어 돌아간다. 누구라고 이야기 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알만한 인물들이 드라마 곳곳에 등장하면서 재미를 더해준다. ‘아, 저거 누구다’하고 맞추기 게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우리 중년 아저씨들은 아버지 세대의 먹고 살기위해 내리 달려온 세월을 이어받아 넉넉한 환경 가운데서 공부하고 놀고 즐기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래도 무슨 불만이 그렇게나 많은지 투정부리고 인생살이 고달프고 힘들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학생 때는 대학입시가 힘들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우는 소리를 한다. 취업하고 나면 샐러리맨들은 직장생활이 괴롭다고 사표를 품고 산다. 개인사업을 한 들 편할 리가 없다. 우리 모두는 계속되는 불경기에 성장은 하되 고용이 없는 새로운 페러다임의 경제상황에 처해 있다.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다 힘들고 어렵다. 쉬운 인생이란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 힘들다고 느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남의 탓만 하면서 말이다. 부모를 잘 못 만나서,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서,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 못해서.

내 탓이라는 생각은 못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남의 탓만 해서는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국제시장’에서 덕수의 환경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하지만, 악으로 깡으로 가장이라는 책임을 짊어지며 버티어냈다. 그 평생의 삶의 무게를 본인이 아닌들 누가 알아주겠는가? 자식들도 몰라준다.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덕수는 왜 적자가 나는 ‘꽃분이네’를 팔지 않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무심코 보다가 덕수가 ‘누군가의 아들이었구나’는 생각에 미쳤다. 덕수에게 국제시장의 ‘꽃분이네’를 알고 있는 아버지가 찾아오지 않을까하는 바램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덕수의 마지막 소원은 ‘꽃분이네’를 팔아버리는 순간 그 실낱같은 희망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가족들은 아무도 모른다. 왜 덕수가 자신들의 아버지가 적자만 나는 옛날 구닥다리 점포를 계속 운영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덕수가 가게를 팔자고 이야기 하면서 이 영화를 끝을 맺는다. 아버지와의 만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희망, 살아있으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아버지와의 약속인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을 멋지게 해낸 덕수는 이 시대 대한민국 아버지의 모습이며 존경받아야 할 위인이다. 이런 위인들이 많은 대한민국이기에 이 어려운 풍파 속에서도 굳건하게 살아가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아버지들이 있는 것이다. 나도 위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덕수의 절 반 만큼 이라도 책임감 있는 아버지이고 싶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의 아버지역을 맡았던 배우 정진영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의 아버지역을 맡았던 배우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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