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가 안전불감증에 빠졌다고 한다.
우리사회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근심걱정증에 걸린듯 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의 밑바탕에는 항상 공포가 깔려있었다.
공포를 조장하여, 그 공포를 없애는 방법으로 전쟁이 일어났다.
정치, 사회, 직장, 심지어 일상에서도 공포는 널리 사용된다.
공포나 충격요법만큼 즉각적이고 탁월한 효과가 많지않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압박면접, 스트레스 면접같은 방식들이 등장했다.
배려보다는, 기능이 우선시되고, 과정보다는 목표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공포심이 안전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킨다.
자녀의 미래에 대해 근심걱정이 지나치면, 아이는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어둡게 조명하고, 나아가 그 미래가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인간의 뇌가 공포로 인해 항상 경계사이렌을 울리고 있으면,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준다. 이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트라우마)라 한다.
전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미군병사들의 20%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 생존하려는 안전장치가 지나쳐서, 오히려 일상생활에 지대한 방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이루지 못한 것과 같다는 말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지나친 경쟁과,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과 불안 등이 아동이나 청소년들에게도 예외가 되지않고 있다.
 
"경기도 학생들이 학교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100점 만점에 평균 74.3점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교육청은 22일 학생ㆍ교사ㆍ학부모 대상 '학교 행복지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가정과 학교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성적만을 강조하고, 미래만을 보고 내달리기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피로를 씻어내줄 힐링과 행복을, 일상에서 찾지 못하고, 먼 곳에서 찾고 있지는 않은가?
대학이 학문을 탐구하기보다, 직업인만을 양성하는 학원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오늘날 대학의 정신이 사라졌다는 말은, 그 안에 사람의 정신이 사라졌다는 것과도 같다.
가정에서조차 우리는 공포를 조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안식과 평화가 있어야 할 곳에, 높은 이상의 탑을 쌓아 올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안간힘을 쓰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는가?
마치 분단과 대치의, 우리의 한반도 상황처럼, 냉전과 치열한 경쟁, 그 모든 역사적 산물을 이어받아, 공포에 세뇌되어 오로지 앞만보고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가?
멈춤을 정체(停滯)로, 쉼을 낙오(落伍)로, 목표를 위해서는 원칙과 안전도 버리고, 바쁘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세계는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하나같이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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