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앞에 모인 밀양 주민들이 송전탑 공사 중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앞에 모인 밀양 주민들이 송전탑 공사 중단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공사 강행 속 경찰-주민 충돌 계속…국회 통과 송주법 평가 엇갈려

 

지난해 10월 경남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765kV 송전탑 공사현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과 경찰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경남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765kV 송전탑 공사현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과 경찰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밀양=연합뉴스) 김영만 기자 = 한전이 지난해 10월 2일 대규모 경찰력의 지원 아래 경남 밀양지역 765㎸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지 오는 9일로 100일째가 된다.

한전이 철탑을 완공한 6곳을 포함해 24곳의 송전탑 현장에서 공사를 벌이는 가운데 반대 주민과 공사장을 보호하는 경찰 사이의 충돌은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음독해 숨진 송전탑 경과지 마을 주민 1명의 음독 원인을 놓고 진실공방이 계속되고 있고, 송전탑 피해 보상을 확대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속에 한전과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가 최근 잇따라 대화 테이블에 앉았지만 서로 입장 차만 재확인하는데 그쳐 해결 전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난 4일 경남 밀양 영남루 앞에서 주민 고 유한숙씨를 추모하는 촛불 문화제가 열린 가운데 '한전은 송전탑 공사 당장 중단하라'고 적힌 피켓이 놓여 있다.
지난 4일 경남 밀양 영남루 앞에서 주민 고 유한숙씨를 추모하는 촛불 문화제가 열린 가운데 '한전은 송전탑 공사 당장 중단하라'고 적힌 피켓이 놓여 있다.

◇한전-주민 갈등 9년째 접어들어…공사 확대

밀양지역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한전과 반대 주민의 갈등은 이제 9년째에 접어들었다.

갈등은 765㎸ 신고리 원전-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의 환경영향평가 주민 설명회가 열렸던 2005년 8월부터 시작됐다.

이후 주민의 거센 반대 등으로 지난해 9월까지 송전탑 공사가 중단됐다가 재개되는 사태가 11차례나 반복했다.

그동안 갈등을 해결하려고 국민권익위원회, 경실련, 국회의 중재로 갈등조정위원회, 보상제도 개선추진 위원회, 전문가 협의체 등이 잇따라 운영됐으나 모두 합의 도출에는 실패했다.

한전은 지난해 10월 2일 밀양시 단장면 등 5개 현장에서 12번째로 공사를 재개한 이후 3개월 만인 지난해 말까지 6기의 송전탑을 완공했다.

이는 한전이 주민 반발로 오랫동안 공사하지 못한 밀양시 4개 면 전체 52기 송전탑의 11.5%에 해당한다.

한전은 올해 공사 현장을 지속적으로 늘릴 방침이며, 1월까지 4기를 추가로 완공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한전은 지난해 9월 30일 개별 보상을 시작한 이후 12월 말까지 전체 지급 대상 2천200가구 가운데 1천783가구(81%)에 보상금을 지급 완료했다.
 

지난 6일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가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며 음독 자살한 유한숙 씨의 생전 녹취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지난 6일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가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며 음독 자살한 유한숙 씨의 생전 녹취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개별 보상금은 가구당 평균 400만원에 이른다.

한전의 개별 보상에 대해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7일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401명의 서명을 받아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대책위는 송전탑이 지나는 마을 주민에게 개별 지급되는 보상금은 법적 근거와 객관적인 기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을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고 감사 청구 이유를 설명했다.

◇공사 강행 속에 경찰-주민 충돌 이어져

한전의 송전탑 공사 강행 속에 공사를 저지하려는 주민과 보호하려는 경찰 간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새해에도 충돌이 일어났다.

지난 6일과 7일 송전탑 경과지인 밀양시 상동면 고답마을 입구 공터에서 주민과 경찰이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주민들이 경찰의 숙영용 컨테이너 설치를 막으려 하자 경찰이 진압에 나서 이틀 연속 충돌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주민 등 10여 명이 다쳤고, 주민 정모(73)씨 등 6명이 경찰에 연행돼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경찰과 주민의 충돌과 대치는 지난해에도 상동면과 단장면 송전탑 곳곳에서 수십 차례 발생했다.

송전탑 반대 대책위는 이런 충돌로 3개월여간 주민 부상과 경찰 연행이 각각 100건과 73건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환경운동가 1명과 주민 1명이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주민 음독 자살 원인 둘러싸고 공방

송전탑이 지나는 마을의 한 주민이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으며, 경찰과 유족 측이 음독 원인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밀양시 상동면에 사는 유한숙(71) 씨는 지난해 12월 2일 오후 자신의 집에서 농약을 마신 뒤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나흘 만인 6일 새벽에 숨졌다.

음독 원인에 대한 유족과 경찰의 주장이 서로 다르다.

유씨 자녀는 "아버지는 송전탑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밝혔다.

유족과 대책위는 6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유씨의 생전 녹취 자료를 공개했다.

5분여 분량의 녹음자료에는 "어떻게 하든 765가 글로(그리로) 가면 안 돼…"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밀양경찰서는 보도자료를 내 "유족의 최초 진술 등을 토대로 판단해보면 유 씨는 음주, 돼짓값 하락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유씨의 분향소 위치를 놓고도 유족 측과 밀양시 등이 마찰을 빚고 있다.

유족은 지난해 12월에 밀양시청을 여러 차례 방문해 "아버지의 죽음이 송전탑과 관련돼 공적인 성격을 띠는 만큼 분향소를 시청 앞에 설치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밀양시는 유족의 이 요구를 거절했다.

밀양시는 영남루 맞은 편 하천 둑에 있는 분향소를 아래의 둔치로 옮기는 것은 허용하겠지만 시청 앞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송주법 국회 통과 평가 엇갈려

송전탑과 송전선로 피해 주민의 보상을 확대한 '송·변전 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송주법)이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송주법에 대한 한전과 대책위의 평가가 엇갈렸다.

한전은 보상 범위가 대폭 확대됨에 따라 주변 주민들에게 적잖은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했다.

예를 들어 765㎸ 송전탑의 재산 보상 범위는 송전탑 양끝 경계를 기준으로 해 바깥쪽 3m에서 33m로 늘었다.

이번 송주법 통과로 재산 보상 352억원, 주택 매수 222억원, 지역 지원사업 1천억원 등의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한전은 추계했다.

그러나 대책위는 반대 견해를 밝혔다.

대책위는 "송주법은 주민의 재산과 건강 피해에 대한 실태 조사도 없이 보상 기준을 정하는 등 적잖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소음과 전자파 피해 등 건강권 관련 사항과 피해 지원 과정에서의 주민 참여 부분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이 법은 기존 송전선로로 피해를 보는 주민들을 보상 대상에 제외해 형평성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보상 범위도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며 "헌법 소원을 내겠다"고 밝혔다.

◇대화의 장 열렸지만 입장 차 뚜렷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와 한전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3차례 대화를 했지만 입장 차만 재확인했다.

이 자리에서 대책위는 송전탑 공사 중단을 비롯해 유한숙 씨의 음독 사망에 대한 사죄, 향후 손해에 대한 한전의 책임 면제 등 개별 보상 독소 조항 철폐, 부분 지중화, 송전선로 경과지 변경, 집단 이주 등 5개 안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특히 한전은 이달 초부터 2월 중순까지 45일간 공사를 중단하고 반대 주민과 소통 기구를 구성해 직접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한전은 공사 중단이 전제되면 대화를 할 수 없다며 완강하게 반대했다.

부분 지중화와 송전선로 노선 변경에 대해서도 한전은 불가하다는 이전의 입장을 고수했다.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하자 대책위는 "현 상태로는 직접 대화가 어렵다. 한전의 전방위적인 공사 강행이 이어진다면 파국은 필연적이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해법 없나…"대화 채널 만들어야"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8일 "밀양 송전탑 갈등은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지금으로선 대화의 채널을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 소장은 "정부의 책임 있는 기관이 주민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밀양 송전탑 갈등 탓에 주민 2명 외에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하는 등 '죽음의 소용돌이'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박 소장은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현재 한전이 공사하는 18기의 송전탑 공정을 일단 멈추는 정도가 적절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사를 계속하는 조건에서 대화하자고 하면 주민이 반대할 것이고, 공사를 완전히 중단하고 대화하자고 제의하면 정부와 한전이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 공정에서 멈추는 것이 양측 간에 타협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ym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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