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엔총회서 외교적 해법 강조…양국 정상 회동은 불발 앙숙 이스라엘 "속지 말아야"…프랑스·캐나다도 신중론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제 68차 유엔총회에서 30년 이상 중동의 '화약고'로 불린 이란 핵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외교적 접근이 모색되고 있다.

이란이 먼저 이번 총회에 앞서 서방을 상대로 유화공세를 펼친 데 이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총회 기조연설에서 온건 성향의 새 이란 정권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면서 이란 핵사태 해결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숙적 이스라엘이 이란의 평화협상 제안을 '속임수'로 맹비난하는 등 반발도 만만치 않다.

오바마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이란의 핵무장 문제를 핵심 사안으로 꼽으면서 협상을 통한 해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같은 날 유엔총회 연단에서 "핵무기 등 대량살상 병기는 우리의 안보·국방 정책에서 설 자리가 없다"며 정확한 기한과 결과를 중시하는 협상에 돌입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이번 주 중반 이란 핵문제에 관한 유엔 다자 협상에 참여할 예정인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란 외무장관이 이 사안에 보인 열정과 결단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오는 2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대 상임이사국과 독일, 이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이른바 EU주재 'P5+1' 회의에서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을 만날 예정이다.

그러나 이란과 외교적 대화 분위기에 제동을 거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이란 핵무장을 최대 위협으로 보는 이스라엘은 이번 대화 제안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평화적 목적의 핵개발은 계속하겠다는 로하니 대통령의 주장이 '위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로하니 대통령 연설 이후 낸 성명에서 이란이 여전히 핵개발 중단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면서 "핵무장에 필요한 시간을 벌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국 외교관들에게 로하니 대통령이 연설할 때 유엔 총회장에서 모두 퇴장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프랑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유엔 총회장에서 로하니 대통령을 잠시 만난 뒤 이란의 화해 제안에는 핵무기 포기라는 확고한 의사표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신중론을 내비쳤다.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 총리도 "대화 시도는 좋지만 말보다는 행동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로하니 대통령은 24일 유엔총회 참가를 계기로 비공식 회동까지 검토했으나 이란 측이 '상황이 너무 복잡하다'면서 만남을 거부해 무산됐다고 미국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이날 또 반기문 총장 주재로 각국 정상 초청 오찬이 있었으나 로하니 대통령은 식사에 술이 제공된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미국과 이란의 정상 회담은 1977년 이후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다. 유명 재미(在美) 이란 언론인인 네가르 모르타자비는 이와 관련해 "오바마와 로하니가 대중 앞에서 악수를 한 것이 아니지만 막후에서 대화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

이란 핵개발은 애초 미국 등의 핵발전소 기술 지원으로 1950년대 시작됐다가 1979년 친미 성향의 팔라비 왕조가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쫓겨나며 서방 세계의 골칫덩이가 됐다.

1980년대 중후반에는 몰래 핵폭탄을 개발한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미국의 비호를 받는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 폭격까지 검토할 정도로 긴장이 커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우라늄 농축 중단 등을 요구하면서 자산동결과 군수물자 수출금지 등 제재안을 2006년 이래 수차례 통과시켰지만 문제 해결에 성과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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