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숫집 주인 서영남씨 "자신의 귀한것 나누는게 진짜 나눔"내년초 필리핀 빈민지역 3곳에 민들레국수집 개점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사랑만이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인천 달동네인 동구 화수동에 자리 잡은 '민들레국수집' 칠판에 적힌 김남주 작가의 시 일부다.

올해로 개점 11년째인 민들레국수집은 누구나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무료식당이다. 목·금요일을 제외하고 매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매일 400∼500명의 손님이 이 국숫집을 찾는다.

대부분 손님이 노숙하거나 쪽방에 사는 사람들인 만큼 국수보다는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는 '밥'을 대접한다. 잠잘 곳과 갈아입을 옷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머물 수 있는 공간과 새 옷을 준다. 이들은 국숫집에서 '귀빈'으로 대접받는다.

국숫집 주인 서영남(59)씨는 19일 "'소유로부터 자유,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投身)'을 기본정신으로 국숫집을 시작했다"며 "그동안 집배원 아저씨, 노점상 할머니 등 이웃들의 끊임없는 후원 덕분에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밥을 대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민들레국수집이 퍼트린 '민들레 홀씨'는 곳곳에 꽃을 피우고 있다.

지난 2009년에는 천주교 인천교구와 이웃들의 지원으로 노숙인들을 위한 전국 최초의 문화공간 '민들레 희망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국숫집에서 걸어서 4∼5분 거리에 있는 이 센터는 노숙인들에게 휴식, 목욕, 독서, 직업상담 등의 편의를 제공한다. 현재 회원 수는 1천600여명이며 하루 평균 150명이 센터를 이용한다.

달동네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민들레 꿈'과 기부받은 의류와 신발을 무료로 주는 '민들레 가게'도 수년간 성업 중이다. 현재 100여명 아이들이 매일 공부방에서 밥을 거르지 않고 마음껏 공부한다. 민들레 가게도 회원 수가 1천400여명에 달한다.

지난 2011년부터는 필리핀 빠야타스 지역 어린이에게 옷과 생필품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필리핀 중·고교생 104명에게 1년치 장학금을 보냈다.

서씨는 현재 필리핀 마닐라 등 빈민촌 3곳에 민들레국수집 개점을 준비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초 문을 연다.

서씨는 "나눔이란 자신의 귀한 것을 나누는 것이다. 내가 먹기 싫고 버리기 아까운 것을 생색내서 주는 건 나눔이 아니다"라며 "쌀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던 시절 주머니를 털어 대접했던 닭백숙 한 그릇의 행복은 잊지 못한다"고 나눔 실천의 이유를 밝혔다.

서씨의 소망은 국숫집 손님들이 밥이 지겨워 국수를 찾을 때까지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손님들이 팍팍한 삶을 살고자 먹는 '밥' 대신 여유롭게 출출함을 달래는 '국수'를 찾길 바란다.

재기에 성공한 손님들이 민들레국수집에서 국수를 찾는 날을 기다리며 서씨는 오늘도 밥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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