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만난 거창사건 희생자들 명예회복 기원"

영화 '청야' 김재수 감독 (거창=연합뉴스) 황봉규 기자 = 거창 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영화 '청야'를 제작한 김재수 감독이 경남 거창군 신원면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거창사건의 처참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13.9.20 bong@yna.co.kr
영화 '청야' 김재수 감독 (거창=연합뉴스) 황봉규 기자 = 거창 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영화 '청야'를 제작한 김재수 감독이 경남 거창군 신원면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거창사건의 처참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13.9.20 bong@yna.co.kr

(거창=연합뉴스) 황봉규 기자 = "운명처럼 만난 거창 양민학살사건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인 거창 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영화 '청야'를 제작한 김재수(55) 감독은 20일 제작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지난 3월 25일 경남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위령제를 지내는 장면을 시작으로 촬영에 들어가 5개월여 만인 최근 영화 제작을 마쳤다.

영화는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당시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거창군 신원면 일대 주민 719명을 공비와 내통한 '통비분자'로 몰아 학살한 사건을 다뤘다.

사건 당시 작전명 '견벽청야(堅壁淸野·벽을 튼튼히 하고 들을 깨끗하게 한다)'에서 제목을 딴 이 영화는 2011년 거창사건 60주기를 기리는 의미로 거창군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김 감독은 "희생자 대다수가 어린이, 노인, 부녀자들인데 전쟁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죽어갔다"며 "점차 잊혀지고 외면받는 거창사건을 영화로 제작해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애초 거창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경남 고성 출신인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40년 넘게 서울에서만 생활했다.

1980년대 거창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가 김원일 선생의 '겨울골짜기'를 읽은 적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2009년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귀농을 실천에 옮기고 나니 귀농한 곳이 하필이면 거창사건의 현장이었다.

김 감독은 "부동산중개소를 통해서 귀농할 집을 구하다가 마련한 집이 거창 신원면에 있었고, 짐을 싸서 내려온 날이 6월 25일이었다"며 "거창사건을 운명처럼 만났다"고 소개했다.

이후 김원일 선생의 겨울골짜기를 다시 꺼내 읽고 그 책에 나오는 곳을 모두 돌아다녔다.

그는 처참하게 학살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했으나 제작비 문제로 포기했다.

귀농 다음 해인 2010년부터 벼농사와 고추농사를 지으며 신원면 수동마을 이장을 맡아 지내면서 틈틈이 기획안을 만드는 데 만족해야 했다.
 

영화 '청야' 김재수 감독 (거창=연합뉴스) 황봉규 기자 = 거창 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영화 '청야'를 제작한 김재수 감독이 경남 거창군 신원면 거창사건추모공원 인근 박산합동묘역에서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13.9.20 bong@yna.co.kr
영화 '청야' 김재수 감독 (거창=연합뉴스) 황봉규 기자 = 거창 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영화 '청야'를 제작한 김재수 감독이 경남 거창군 신원면 거창사건추모공원 인근 박산합동묘역에서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13.9.20 bong@yna.co.kr

그러다가 영화 쪽으로 눈을 돌렸고 거창군에 기획안을 내 1억 2천500만원의 군비 지원을 약속받아 영화 제작에 나설 수 있었다.

열악한 제작비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출향기업과 지역 기관·단체가 지원에 나서면서 영화 제작을 마무리했다.

영화에는 거창학살사건 가해자와 피해자의 후손이 우연히 거창에서 만나 진실을 알게 되면서 화해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담았다.

제작비 문제로 대규모 군중이 모인 장면과 역사적인 사실을 재연하는 장면을 연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감독은 이 영화를 다음 달 부산국제영화에서 먼저 선보이고 나서 11월께 일반에 개봉하는 등 다양한 채널로 관객에게 다가갈 계획이다.

김 감독은 "제주 4·3 사건은 국가기념일이 됐고, 광주민주화운동은 피해 보상이 다 이뤄졌다"며 "거창사건은 국가가 잘못을 인정한 판결까지 나왔지만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은 아직 요원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역사적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피해자들이 화해의 손을 내밀 것이다"며 "화해는 청야에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주제다"라고 강조했다.

bo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코리아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