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객 만난 것은 특별한 경험"

방한한 벨기에 입양인 감독 융 헤넨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벨기에로 입양된 만화가 겸 영화감독 융 헤넨이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피부색 꿀'을 들고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참가차 방한해 지난 17일 서울 상수동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3.11.18    mihye@yna.co.kr
방한한 벨기에 입양인 감독 융 헤넨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벨기에로 입양된 만화가 겸 영화감독 융 헤넨이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피부색 꿀'을 들고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참가차 방한해 지난 17일 서울 상수동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3.11.18 mihye@yna.co.kr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벨기에로 입양된 만화가 겸 감독 융 헤넨(48·한국이름 전정식)이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피부색 꿀'(Couleur de peau: Miel)을 들고 한국 관객을 찾아왔다.

지난 11일 막을 내린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초청돼 방한한 융 감독은 17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피부색 꿀'로 세계 각국 관객을 만났지만 한국 관객을 만난 것이 무엇보다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2008년 출간된 감독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융 감독과 로랑 보왈로 감독이 함께 만든 '피부색 꿀'은 지난해 완성돼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브라질 애니마문디 등 유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작에 뽑혔다.

이번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국내 관객에게도 처음 선을 보였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작품이 시작된 곳에서 상영할 수 있어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영화제에서 상영이 끝난 뒤 한 여자 관객이 찾아와 '어린 시절 무척 가난해서 내가 다른 나라에 입양됐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영화를 보고 그 시절이 떠올라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죠."

융 감독은 1970년 입양된 후 20대 초반부터 만화가로 활동하며 '야수다', '소녀와 바람', '콰이당' 등 여러 단행본을 출간하며 인정을 받았다. 픽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그린 것은 '피부색 꿀'이 처음이었다.

2009년 국내에서도 출판된 '피부색 꿀'에는 남대문에 버려졌던 다섯 살 꼬마가 벨기에 부모를 만나 자라온 성장담이 감성적인 그림과 함께 그려진다.

"이전에도 정체성이라든지 혼혈, 모성 등은 제 작품의 주요 테마였습니다. 그동안 주변을 맴돌아왔다면 이제는 근본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내 이야기를 해보자고 결심하게 됐죠."

감독이 이렇게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품 속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오랫동안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거부해왔습니다. 왜 한국은 자기 아이들을 외국에 보내는지 이해할 수 없어 분노에 휩싸여 있었죠.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속 깊이 내 불행을 받아들이게 됐고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수용하게 됐습니다. 아주 긴 과정이었지만 지금은 제 뿌리가 자랑스럽습니다."

'피부색 꿀'은 내년 4∼5월께 일반 상영관에서 개봉돼 더 많은 국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생모를 찾는 것은 정체성을 찾는 일보다 덜 흥미로운 일"이라며 굳이 생모를 찾지 않는 융 감독이지만 작품이 한국에 소개될 때마다 어쩌면 생모가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생모가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그리고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많은 입양인에게 영화를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융 감독은 말한다.

"버려졌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하도록 운명이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 같은 입양인은 한국인과 벨기에인의 중간에 있죠. 중간에서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 갈등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가 배운 것은 반드시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두 문화를 모두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죠."

역시 입양인 출신의 아내와 결혼해 살고 있는 융 감독은 이번 방한 길에 가족도 동반했다. 특히 '피부색 꿀'의 음악 작업에도 참여한 딸 알리아 토트(18) 양은 이날 상수동 카페에서 작은 공연을 꾸미기도 했다.

융 감독은 "알리아도 이번에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에 함께 왔다"고 소개했다.

김동화·이희재의 만화, 이창동·박찬욱·봉준호의 영화,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 등 한국의 작품들도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융 감독은 "차기작은 한국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세 운명의 성장을 그린 작품"이라고 귀띔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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