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도 인력시장서 노동력 조달…"농촌 청년 도시 올라와 막노동"

북한 평양시 락랑구역에 있는 통일거리시장의 내부.//북한/      2004.7 .22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평양시 락랑구역에 있는 통일거리시장의 내부.//북한/ 2004.7 .22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윤일건 기자 = 최근 북한에서 돈을 주고 노동력을 사는 자본주의식 인력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노동력 거래를 '사회주의 노동원칙에 위배된다'며 강력히 통제해 왔던 북한 당국이 이를 묵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복수의 대북소식통은 17일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음성적으로 생긴 인력시장이 현재는 당국의 비호와 참여로 거의 합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시장에서 일꾼을 사지 않으면 어떤 작업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남한의 인력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대북소식통들과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최근 잡일은 물론이고 도로정비 같은 웬만한 중소 규모의 건설작업까지 인력시장을 통해 일꾼을 사서 일당을 주고 일을 시키는 게 일반적인 현실이 됐다.

북한에서 노동력 거래는 1990년대 말부터 시작돼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로 늘어나기는 했지만 당국의 통제와 단속을 피해 불법적으로 이뤄지고 규모도 작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당을 주고 일꾼을 구하는 것이 일상화돼 공공기관도 인력시장을 통해 노동력을 구할 정도가 됐다.

이 때문에 평양시 교외의 통일거리시장이나 송신시장 등 평양과 각 지방의 주요 시장(장마당)을 중심으로 노동력 거래가 활기를 띠고 있다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주민들과 자주 통화하는 탈북자 A씨는 "얼마 전 한 지방도시에서는 인민위원회가 청사를 리모델링하면서 인력시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을 모집해 일당 1만원씩 주고 점심과 저녁식사까지 제공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인민반장들이 소속 주민의 돈을 모아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법으로 인민반에 할당된 건설공사를 하고 있지만 북한 당국은 눈감아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력시장의 활성화로 일용직 노동자의 일당은 일반 근로자의 월급을 훨씬 추월하고 있어 오히려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이 돈을 내고 결근해 일용직 노동에 나서는 추세라고 한다.

최근 인력시장에서 막노동자의 일당은 개인이 가진 기술에 따라, 또 지역마다 차이가 나지만 평균 북한돈 1만∼2만원 정도다.

농촌에서는 뙈기밭을 가진 농민들이 수확철에 일당으로 옥수수 10∼15㎏씩 주고 일꾼을 고용하기도 한다.

작년 12월 탈북한 함경북도 청진 출신 허모씨는 "요즘은 1만원 갖고는 일반 막노동자도 구하기 어렵다"라며 "실력 있는 미장공이나 목수는 일당으로 중국돈 50∼100위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시장에서 1위안이 북한돈 1천300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고급 기술자의 일당은 많게는 13만원에 달하는 셈이고 이 액수면 쌀을 20㎏ 넘게 살 수 있다.

또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농민공이 급속히 확대됐던 것처럼 북한에서도 도시에서 일하는 막노동자의 상당수가 주변 농촌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 씨는 "청진시 수남구역 신항동 '나무촌'에 가면 인근 농촌지역에서 올라온 청년들이 모여 나무를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주요 인력시장"이라며 "도시에 올라온 농촌 청년들은 10여 명씩 모여 합숙하면서 막노동으로 돈벌이한다"고 전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김정은 체제 들어 공장과 기업의 자율성이 대폭 확대되면서 사적 노동시장 확장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라며 "북한 당국이 2002년 시장의 현실을 인정하고 종합시장 확대 정책을 내놨던 것처럼 앞으로 노동시장도 제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yoonik@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코리아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