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이야기 수집하는 '코리안 아메리칸 스토리'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1900년대 초반 하와이로 건너간 초기 한인 이민자의 아들, 북녘에 가족을 둔 이민 1세, 미국인 부모에게 입양된 혼혈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1.5세….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 그보다 훨씬 다양한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재미동포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으는 곳이 있다.

2010년 만들어진 비영리기구 '코리안 아메리칸 스토리'(http://www.KoreanAmericanStory.org)는 미국 전역 재외동포들의 이야기를 글과 동영상으로 수집해 축적하고 있다.

단체를 조직한 재미동포 1.5세 이형직(51) 씨는 29일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우리의 유산을 남기고, 뿌리를 알고 싶어하는 후속 세대들이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대구에서 태어나 11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이씨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20년 가까이 종사하다가 일을 그만두고 자신과 같은 재미동포의 이야기를 모으는 일에 뛰어들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기보다는 내가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공동체에 좀더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2, 17세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우리의 뿌리를 알면 현재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를 한층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익숙한 모든 것을 버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한 꿈 하나만 품고 아무런 역사도, 뿌리도 없는 곳에 오게 된 이야기를 제 아이들이 알았으면 해요. 자신의 역사와 유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게요."

여러 재미동포의 자원봉사로 꾸려지는 이 단체는 미국 각 지역의 한인을 인터뷰하거나 기고를 받아 글과 영상으로 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이렇게 구축된 이야기들은 외부 기관들이 학문적·예술적 목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가장 역점을 두고 벌이는 사업은 '레거시(legacy) 프로젝트'.

재미동포 가족의 젊은 세대가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에게 언제 미국에 왔는지, 이민을 후회하지는 않는지, 고국에서 가장 그리운 것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이러한 세대 간의 대화를 영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비디오는 가족과 단체가 한 부씩 보관하고 이것을 다시 5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해 사이트를 통해 공개하면서 더 많은 가족의 참여도 독려한다.

"가족에게 이것이 생애 마지막 대화라고 가정하고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자료들은 서던캘리포니아대의 코리안 헤리티지 박물관에서도 보관하는 방법을 논의 중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준 사람에게는 소정의 금전적 보상도 한다. 주로 30∼40대 재미동포들로 이뤄진 개인 기부자들에게 받은 운영비로 충당한다.

모아진 이야기들은 책과 영화로도 만들 계획이다. 특히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 재미동포들의 이야기를 장편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 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새삼 알게 됐습니다. 우울증, 자기혐오,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한인사회에서는 이들의 존재를 쉬쉬해 왔는데 이들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이야기를 함께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죠."

앞으로도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더 많은 재미동포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이씨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그리고 한국 내에서도 한인들의 이야기가 쌓이길 바란다고 털어놓았다.

"코리안 차이니즈 스토리, 코리안 저먼 스토리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역사를 되짚다 보면 거주국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깨달으며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되죠. 세대 간 대화를 활성화할 수도 있고요." mihye@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코리아프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