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갖고 있는 종북(從北)의 기준과 범위는?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의 증인신문 도중, 재판장이 민병주 전 심리전단 단장에게 "종북의 기준은 없는가?"라고 물었다.

민병주 전 단장은 "다른 데는 있는지 몰라도 잘……"이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국정원 정치관여 의혹 사건 수사를 담당한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여주지청장)도 민 전 단장에게 공소사실에 대해 강력하게 추궁했다. "댓글 달기도 공권력 행사인데 무슨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나, 기준이 없다면 종북 척결을 빙자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팀장은 "국정 수행 지원이나 종북 좌파 척결, 모두 좋은 말이다. 하지만 기준과 범위 없이 공작부서 임의로 이뤄질 경우 100% 선거 개입이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측은 또다시 "종북좌파 척결이라면 그 척결 대상이 얼마나 명확한가, 이것이 공소 제기의 핵심이다. 공소시효 문제로 지난 대선 관련 혐의만 기소했지만 그 전에도 비슷한 일이 계속 이어져왔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북한의 사상이나 체제를 단순히 동조하는 자들을 모두 '종북 세력'으로 지칭한 뒤 척결을 위해 사이버 활동을 벌이는 것"이라며 "야당의 주장이 북한의 주장과 우연히 일치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아울러 "이번 사안은 전형적인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기소한 것이 아니다. 국정원이 어떤 기준도 없이 안보활동을 빙자해 임의로 정치개입과 선거개입을 하고 있다는 것이 기소의 취지"라고 말했다.

검찰 측은 "국정원이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 활동에 대처하기 위해 사이버 활동을 했다면 국정원의 의견임을 공표하지 않고 일반 국민인 것처럼 의견 개진한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또한 "정당한 활동으로 북한의 대남 선전 등 실상을 알리고자 했다면 제대로 된 실태를 알려야지, '4대강 사업 제대로 한겁니다' 등 결과만 내놓았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민 전 단장에 대한 증인신문은 병풍형태의 차단막을 설치한 채로 진행됐는데, 원 전 원장 측 변호인단은 비공개로 심문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해 2월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이 ‘금년 한해는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는데 종북좌파는 북한과 연계해서 다시 정권을 잡으려고 하고 있다’ ‘야당이 (당선)돼야 강성대국이 완성된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다’라고 지시한 바 있다.”는 녹취록에 대해서도, “다시 정권을 잡으려는 종북좌파”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냐“고 민 전 단장을 추궁했다.

민 전 단장은 이에 대해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칭해서 지시한 적은 없다"며 "선거를 앞두고 북한이 계속 지령을 내려 실상을 알리기 위해 원론적으로 지시했던 것"이라고 답변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다음 공판은 오는 9일 속행되며, 이날은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예정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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