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메르세데스-벤츠는 아주 오랜 세월 '명차'의 대명사였다. '최고의 명차'와 동의어였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벤츠 스스로도 이런 자부심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았다. '최고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The best or nothing)라는 슬로건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사실 근래 들어 벤츠의 이런 자부심에도 흠집이 생겼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3대 럭셔리 자동차'의 1위 자리를 같은 나라의 BMW에게 넘겨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제품 목록은 쉽게 넘보기 힘든 벤츠의 저력을 증언한다.

그 목록에 오른 차들은 해치백인 A-클래스나 소형 승용차인 C-클래스에서부터 G-클래스, GL-클래스, GLA-클래스, GLK-클래스 등 다양한 등급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물론 스포츠카인 SL-클래스, SLK-클래스와 이른바 '걸-윙(갈매기 날개) 도어'로 명명된 위아래로 여닫는 문짝을 단 슈퍼카 SLS AMG까지 말 그대로 풍성하다.

이 목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트럭이나 버스, 미니밴 같은 상용차로도 더 확장시킬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란 브랜드 이름을 단 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6년이지만 그 설립자 중 한 명인 카를 벤츠가 1886년 만든 '벤츠 파텐트 모토르바겐'은 최초의 석유 연료 자동차였고, 그래서 벤츠는 통상 최초의 자동차를 만든 회사로 인정받고 있다.

기자가 최근 시승한 메르세데스-벤츠 'E 220 CDI 아방가르드'는 벤츠가 가장 많이 판매한 중형 세단 E-클래스의 여러 모델 중 하나다.

E-클래스란 이름으로 불리기 전인 170V 시리즈 시절(194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 차의 누적 판매대수는 1천300만대를 헤아린다.

플래그십(간판모델)인 S-클래스가 있긴 하지만 가장 많이 팔린다는 점에선 E-클래스가 '대표선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 6월 새 단장을 하고 출시된 E 220 CDI는 벤츠의 대표선수답게 우수한 주행 성능을 보여준다. 가속은 안정적이고, 고속주행에서도 흐트러짐이 없다.

고속도로에서 차들의 틈새를 가로지르며 앞을 헤쳐나가는 주행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이를 따라준다. 그러나 E 220의 가속은 폭발적이라기보다는 차분하고 은근하다.

코너링 능력도 좋다. 감속 없이 굽은 길을 돌자 차 뒤쪽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는 듯했지만 잠깐이었다. 순식간에 자세를 다잡더니 뒷바퀴로 도로를 박차고 앞으로 달려나간다.

제동 능력은 특히 일품이라 할 만하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자 기대 이상으로 짧은 제동 거리에서 바로 멈춰섰다. 그때 차에 탄 사람들의 몸이 크게 앞으로 쏠리지 않는 것도 가벼운 탄성이 나오게 한다. 과장하자면 관성의 법칙을 뛰어넘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요컨대 잘 달리고 잘 멈출 줄 안다.

페이스 리프트(부분변경)된 E-클래스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외모다. 보통 페이스 리프트라면 일부분만 손대는 게 일반적인데 E-클래스는 신형 모델에 가까울 정도의 '성형수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그 결과물도 '잘된 수술'이라는 평판이 일반적이다. 좀 더 날카롭고 예리한 선들이 헤드라이트나 리어램프, 차체의 옆면 등에 포진하면서 한층 젊고 세련된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근래 '중장년을 위한 보수적인 디자인의 차'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는 벤츠로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셈이다.

내부 인테리어 역시 프리미엄 중형차란 '신분'에 걸맞게 우아하면서도 단정하다. 고집스럽게 스티어링휠 오른쪽에 자리 잡은 변속기는 조작할 때마다 '이 차가 바로 메르세데스-벤츠다'라고 거듭 상기시켜준다.

다만 벤츠 오너 드라이버가 아닌 기자는 주행 중 몇 차례 와이퍼를 작동시키려다 변속기를 건드려 조금 당황해야 했다.

이 차의 가격은 6천230만원이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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