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이주사 간직한 전막심 씨, 2013 세계한인차세대대회 참가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러시아 남서부에 카자흐스탄과 맞닿아 있는 칼미크 공화국을 아시나요? 한류 바람 부는 우리나라에 투자 진출하세요."

카스피 해 북서쪽과 볼가 강 하류 서쪽에 있는 동유럽에서는 유일하게 불교가 국교인 칼미크. 수도 엘리스타에 사는 고려인 4세 전막심(40) 씨가 '국가 홍보 전도사'를 자처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터전을 이루고 살다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내던져진 여느 고려인들처럼 아픈 이주사를 간직한 전씨가 꿈에도 그리던 고국을 찾았다.

칼미크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러시아 여성과 결혼해 두 딸을 둔 그는 할머니 다리아 김(92) 씨와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지난 2일부터 재외동포재단이 마련한 '2013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참가하는 전씨는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한국말로 인사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아직 실력이 엉망"이라는 영어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나라(칼미크)는 농업이 발달해 있고, 교육 수준이 높습니다. 최근 황금 석가모니상을 보려는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지요. 한국처럼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습니다. 한번 놀러 오세요."

칼미크에 대한 소개는 줄줄 이어졌다. 국토는 남한보다 조금 작고 인구 30만 명이 13개 군, 102개 마을에 나눠 살고 있다. 이 가운데 고려인은 1천여 명이다.

"자치주로 성립된 건 1920년입니다. 38년 뒤 칼미크인들이 나치 독일과 협력했다는 혐의를 받아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하면서 자치주가 해산됐고, 1957년 흐루쇼프에 의해 귀향을 허락받아 돌아왔어요. 이듬해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됐고요. 1980년대 후반 스탈린의 강제이주에 대한 항의 움직임이 시작됐고, 지역의 지하자원의 통제권에 초점을 맞춘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났지요. 마침내 1990년 10월 공화국 수립을 이뤘습니다."

티베트 불교가 대세인 이 나라는 황금 석가모니상이 들어선 곳에 사원, 박물관, 콘서트홀, 도서관 등을 갖춘 유럽 최대 규모의 불교단지를 조성했고, 이곳을 '유럽불교센터'로 명명했다. 칼미크에 사는 고려인들에 관한 설명도 이어졌다.

"소련 시절인 1965년부터 고려인들이 칼미크 공화국에 거주했어요. 국영농장인 '보스호트 소프호스'를 비롯해 3곳의 소프호스에서 1천500명이 넘는 고려인이 살았답니다. 고려인 지도자 박 바실리(2001년 작고)가 이끄는 소프호스에서는 쌀을 처음으로 생산했고, 이 나라에 벼농사를 퍼뜨렸지요."

그는 이 나라에서 성(姓)도 다르고, 얼굴도 달라 어려서부터 한국인 대접을 받으며 살았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사를 편지로 남겼기에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도 분명하게 알았다.

러시아 타간로크의 라디오기술대학을 졸업한 그는 '인포덱스 엘리스타 텔레콤'에서 라디오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러시아은행 칼미크 공화국 정보보안 관리자로 스카우트됐다. 16년째 이 은행에서 일하는 그는 인터넷 정보보안을 총괄하는 수석관리자로 활약하고 있다.

"칼미크인들은 한국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요. 현대적이고 기술이 발달한 나라로 알고 있지요. 삼성·현대·LG 등 대기업들이 밑바탕을 깔고 그 위에 TV 드라마나 영화,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필두로 하는 K-팝 등 '한류'가 한국을 좋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사람들은 한국을 와 보지 않아 아주 먼 외국으로 인식하고 있답니다."

이번 대회가 끝나고 노래 '강남 스타일'에 나오는 서울 강남구를 찾겠다는 그는 드라마 '청담동 엘리스'를 인터넷을 통해 재미있게 봤다고 자랑하면서 "딸들이 좋아하는 남성 아이돌 그룹 'EXO'를 만나서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한국 영사관이 없어 비자를 내려고 1천㎞ 떨어진 모스크바까지 갔다 왔다는 전씨는 한국 정부가 칼미크의 거리를 좁혀줄 수 있는 정책을 펼쳐달라고 주문했다.

"아직 한국 기업의 진출은 없어요. 농업국가이기 때문에 이와 관계된 산업에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있는 게 별로 없어서 뭐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보면 됩니다. 석유와 가스 매장량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할머니가 담가주는 김치, 간장, 된장을 먹었다는 그는 칼미크에는 고려인이 운영하는 한국식당 2곳이 있는데 한류 열풍으로 손님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소개했다.

이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배울 곳도, 교사도 없어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사람들을 찾아가 배우는 실정"이라며 "한국 정부가 교사만이라도 파견해 주면 고려인 후손이나 현지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전씨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국어를 배운 러시아인에게서 일대일 교육을 받고 있지만 교재가 변변치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한국은 아주 환상적인 곳이에요. 높은 빌딩, 깨끗한 거리, 활기찬 사람들. 모든 것이 '퍼펙트'한 도시예요. 내일 대회가 끝나면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고려인 친구들과 함께 서울 구경을 다닐 거예요."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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