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새것 비치했습니다'… 비서가 李 욕실에 에르메스 로션까지
 닉네임 : 에르메스  2022-02-15 05:05:51   조회: 148   
[ ..... 에르메스 .... 가장 비싼 군에 속하는 것 .....

판매 가격은 98,000원 ....... ]



'새것 비치했습니다'… 비서가 李 욕실에 에르메스 로션까지



2022-02-04 이주희 인턴기자



“로션 교체해놓고 남은 건 합체시켜.”

“새 것은 지사님 욕실에 배치했고 남은 건 모아서 거실에 뒀습니다.”


공개된 내용 중 온라인상에서 가장 화제가 된 심부름은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Hermes) 로션을 이 후보의 욕실에 비치하는 일이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배씨는 텔레그램을 통해 A씨에게 ‘○○○에게 로션 받아서 교체해 놓고 남은 거 두 개 합체 시켜’라고 지시했다. 이에 A씨는 ‘○비서에게 받아서 새것은 지사님 욕실에 비치하였고, 남은 건 모아서 거실에 두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대화와 함께 해당 제품의 사진이 등장하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쏠렸다. 이 지사가 사용한 제품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떼르 데르메스 애프터쉐이브 밤’으로 남성들이 면도 후 피부 진정을 위해 바르는 로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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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에르메스 애프터쉐이브 담은 국내외 온 ·오프라인서 판매되는 애프터 셰이빙 제품 중 가장 비싼 군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떼르 데르메스 애프터쉐이브 밤(에르메스, 100ml)의 공식 홈페이지 판매 가격은 98,000원이다. 디올 맨즈(100ml)와 샤넬 맨즈(90ml) 제품은 7만원대이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2620EB3AJO









『朴대통령은 싸구려 스킨 로션을 좋아했다』



[ .... 朴대통령의 러닝 셔츠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여러번 봤습니다 ......


..... 허리띠도 얼마나 오래 사용하셨던지 구멍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는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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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직원으로 청와대에 상주하면서 이발을 하기 시작한 것은 朴正熙 대 통령의 권유 때문이었습니까



『1969년 청와대 內 비서실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대통령께서 이발을 하기 위한 전용 공간도 마련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이발을 하기 위한 전용 공간이 없었습니다. 이른바 간이 이발관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15평 규모의 전용 이발관이 마련된 직후 하루는 대통령께서 이발을 하시기 위해 저를 찾는다는 전갈이 부속실에서 왔습니다. 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청와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날 朴대통령께서는 이발을 하시기 위해 이발관으로 들어오셔서는 저를 보고 「朴군, 이제 이발 시설도 갖추고 했으니 왔다갔다 하지 말고 이곳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어떤가」고 물어 오셨습니다. 제가 얼른 대답을 하지 않자 대통령께서 재차 「왜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싫은가」고 하시더군요. 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알겠습니다. 어르신의 지시를 받들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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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씨는 朴正熙 대통령의 이발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자신이 운영하던 이발소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고는 그날로 이발관 문을 닫아 버렸다고 한다. 朴씨는 이날부터 1979년 10월26일 朴正熙 대통령이 金載圭의 총탄에 맞아 他界하는 날까지 항상 朴대통령 곁에서 생활했었다.



『朴대통령은 싸구려 스킨 로션을 좋아했다』



―朴대통령은 주로 언제 이발을 했습니까


『이발을 하시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이발은 주로 일주일에 한 번, 드라이는 이틀에 한 번꼴로 하셨는데, 아침 식사를 하시기 전에 하셨고 소요시간은 30분 정도였습니다. 물론 國事(국사)로 바쁘실 때에는 한 달 가까이 이발을 하지 않으신 적도 있습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히 머리 감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수건을 뜨거 운 물에 담가 그 수건으로 머리를 문지른 다음 스킨을 머리에 바르는 것으 로 이발을 끝냅니다. 대통령께서는 스킨 로션도 비싼 외제 같은 것은 싫어 하시고 그 당시 국산 중에서도 가장 값이 싼 특정회사의 제품을 좋아하셨습 니다. 향기가 마음에 드신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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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이 이발을 할 때 陸英修 여사도 자주 이발관에 오시곤했다는 얘 기를 들었습니다만.


『그랬습니다. 陸여사께서 자주 이발관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朴대통령 머리 만져드릴 수건을 적당한 온도의 물에 적셔 저에게 주시곤 하셨습니다.

여름에도 절전운동 때문에 이발관에 에어컨을 잘 가동하지 않았는데, 陸여사께서 선풍기를 들고 오셔서 朴대통령에게 틀어 주신 적도 많았습니다』



『朴대통령은 곱슬머리』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 잃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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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씨는 얘기를 하던 도중 한가지 가슴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며 소개해주었다. 신축한 비서실 건물이 완공되기 전인 1966년 겨울에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이때는 전용 이발 공간이 갖추어지기 전이기 때문에 머리 감을 때 사용하는 샤워 시설이 돼 있지 않아 더운물은 다른 곳에서 가져다 사용했다고 한다. 이날도 陸여사가 더운물과 찬물을 양동이에 받아와 세면대에 담아 놓았는데 머리를 감던 중 朴대통령이 비눗물에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허리를 다쳐 몇 달을 고생한 적이 있다는 것.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용 타일이 부착돼 있지 않은데다 세면대도 낮아 미끄러지기 일쑤였다는 것.


朴씨는 당시 이 나라 최고 권력자가 이처럼 낡은 시설에서 이발을 하고 있었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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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께서 이발관을 찾으실 때 정장 차림으로 옵니까


『아닙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하얀 러닝 셔츠 차림에다 허리띠를 맨 바지의 윗부분을 한 번 아래로 접고 오십니다. 바지의 허리 부분이 헐렁할 때 허리띠를 맨 부분을 한 번 접으면 어느 정도 맞지 않습니까


朴대통령의 러닝 셔츠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여러번 봤습니다. 대통령이 구멍 난 러닝 셔츠를 입고 계셨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는 갑작스럽게 朴씨로부터 逆질문을 받는 바람에 조금은 당황스러워 「그냥 계속하시죠」라고 넘겼다)


허리띠도 얼마나 오래 사용하셨던지 구멍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는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날 「어르신, 이제 허리띠를 좀 바꾸시지요」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朴대통령께서 「이 사람아, 이것도 아주 편 해. 몇 년은 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라며 웃으시더군요』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 잃지 않아



―朴正熙 대통령은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상관이었습니까


『朴대통령은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부속실로 하여금 이발하러 가겠다는 연락을 하도록 한 뒤 5분 정도만 늦어질 것 같아도 직접 이발관에 오셔서 「朴군, 지금 회의가 끝나지 않아서 그런데 조금만 기다리래이」 하시면서 양해를 구하십니다.


한 번은 연락을 받은 뒤 40여 분 만에 이발을 했는데, 이때에도 朴대통령께서 중간에 이발관으로 오셔서 「미안해서 우짜노. 朴군, 일 마치고 바로 올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라고 하시더군요. 도리어 제가 미안해 「어르신 저는 여기에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생각하시지 말고 충분히 집무 보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리자 「그래 고맙대이」라며 특유의 옅은 미소를 지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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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onthly.chosun.com/client/reporter/writerboardread.asp?idx=28&cPage=16&wid=soonj

청와대 이발사가 본 「인간 박정희」; 『어르신 생각하면 눈물만 납니다

송승호
2001.11.01








박정희의 해진 혁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



1979년10월26일 저녁 경복궁 앞 국군병원에서는 이미 시체가 된 박정희를 놓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필자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인용한다.



< 두 정보부 경비원 유성옥과 서영준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 권총을 일부러 보이면서 둘러 선 군의관과 위생병들에게 "꼭 살려야 해요" 라고 위협조로 말했다. 정규형 대위는 이우철 일병에게 심장마사지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일병은 환자의 가슴 위로 올라가서 두 손을 포갠 뒤에 왼쪽 가슴을 몇 차례 강하게 눌렀다. 동시에 정 대위는 수동식 인공호흡 기 "암부"를 환자의 입과 코에 덮어씌워 놓고 공기주머니를 눌러 공기를 허파로 밀어보냈다.


정 대위는 심장을 자극하여 박동하게 하는 강심제 에피네프린 20cc를 가슴에 주사했다. 심장마사지도 다시 했다. 한 20분간 응급소생법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회생불능이었다.

정 대위는 "도저히 안되겠습니다"라고 했다. 송계용 소령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곁에 버티고 있는 두 감시자에게 이야기했다.


"이 사람이 누구십니까.".


송 소령의 물음에 두 감시자는 대답이 없었다. 며칠 뒤 군의관 정규형 대위는 합수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얼굴을 보고도 왜 각하인줄 몰랐는가"란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했다.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고 감시자들이 응급 처지중에도 자꾸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평범한 세이코였고 넥타이 핀의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해져 있었습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약간 있어 50여세로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한국의 좌파가 원수처럼 욕을 퍼붓고 있는 박정희는 죽을 때 "평범한 세이코, 멕기가 벗겨진 넥타이 핀, 해진 혁대"를 차고 있었다. 그의 집무실과 침실 화장실 물통에는 벽돌 한장씩 들어 있었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의 집무실에는 선풍기와 파리채가 있었다. 기름 절약을 위해서 한여름에도 에어컨 사용을 통제했던 그는 문을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면서 더위를 견뎠다. 벌레가 들어오면 파리채로 잡았다.


그가 죽을 때 입고 있던 바지는 허리 부분을 수선하여 늘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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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 이재명



[ ...... 박정희로 대표되는 친일매국 쿠데타 세력으로 이는 보수의 영역이 아니고 쓰레기 영역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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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시장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훼손한 것은 박정희로 대표되는 친일매국 쿠데타 세력으로 이는 보수의 영역이 아니고 쓰레기 영역이다”라고 질타한 뒤 “이런 보수의 탈을 쓴 부패한 세력을 도려내고 이재명 같은 사람이 보수의 영역을 차지해야 맞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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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0805§ion=§ion2=

이재명 성남시장의 ‘혁명론’ 직접 들어보니
"공정 질서 구축하고 집단지성의 유기적 인격체 믿어야”

송영한 기자
2016/12/20








[ ...... 이승만 전 대통령은 친일 매국 세력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 ....... ]



이재명, 4년전 “이승만 친일매국… 美 사드배치, 조선말 日 닮아”


과거발언·저서로 본 李지사의 역사관



김형원 기자
입력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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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친일 매국 세력의 아버지’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 지사는 2017년 1월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 직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찾아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에만 참배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지나친 이유에 대해 당시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친일 매국 세력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였다”고 했다.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한들 광주 학살을 자행한 그를 추모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다”고 했다.


또 현 야권을 ‘친일 독재 매국 세력’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이 지사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친일 독재, 매국(賣國) 학살 세력이 이 나라 다수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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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 ..... 보통 나물 두가지에 국 한가지로 식사를 했다 .......

...... 저녁 식사 때면 낮에 먹던 반찬 갖고 오라고 말하셨어요.......

..... 생활하시는 게 일반 서민들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 ]




[ ..... 양말도 기워 신고 가루비누도 숟가락으로 재서 썼어요.... 다 떨어진 행주까지 갖고 오셨더군요 ......


..... 두 분 내의와 양말은 항상 할머니께서 직접 손으로 세탁하셨어요. ....... ]




『저렇게 살려면 우리는 대통령 안한다』고 했지요



1947년 이화장 뒷집에 살았던 인연으로 李承晩 대통령 일가와 14년간 생활했던 方在玉(71)씨를 만났다. 이화장을 시찰하러 왔던 李起鵬씨가 그녀에게 청소를 부탁했고 그 일을 계기로 이화장에서 경무대, 다시 이화장까지 대통령 내외와 가장 가까이서 지내게 되었다. 경무대 禹石根(우석근) 경사와 결혼했다.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을 매우 자상한 분, 프란체스카 여사는 매우 알뜰한 분이라고 기억했다. 方在玉씨가 맹장염에 걸렸을 때 대통령은 方씨의 아버지를 경무대로 불러서 수술을 시켜도 좋은지 물은 다음 수술하게 했다. 처녀의 몸에 칼을 대려면 아버지의 허락을 받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소탈한 성격의 李承晩 대통령은 보통 나물 두 가지에 국 한 가지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저녁 식사 때면 낮에 먹던 반찬 갖고 오라고 말하셨어요. 손님을 초대했 을 때 외에는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어요. 생활하시는 게 일반 서민 들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궁핍하게 살 았어요』



프란체스카 여사는 경무대에 있을 때도 미장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실핀으로 머리를 감았다가 드라이로 말리는 게 고작이었다. 옷도 산 적이 없다 고 한다. 천을 구입해 와서 비서인 김신영씨와 함께 블라우스를 만들어서 입었다. 경무대에서도 옷을 꿰매 입는 건 여전했는데 어느 날 대통령이 方在玉씨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했다.



『대통령께서 내복을 들고 저에게 「재옥아 이 꿰맨 걸 나더러 또 입으라 그런다」하시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던 기억이 나요. 너무나도 알뜰하신 영부인이었죠. 양말도 기워 신고 가루비누도 숟가락으로 재서 썼어요. 무섭게 절약하셨어요. 오스트리아에서 영구 귀국하실 때는 다 떨어진 행주까지 갖고 오셨더군요』



14년간 한집에서 생활하면서 대통령의 수발을 들었던 方在玉씨는 두 사람이 부부싸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통령이 급한 성격이어서 화를 내면 할머니(方씨는 프란체스카 여사를 할머니라고 지칭했다)가 일단 피하기 때문에 부부싸움이 되지 않아요.


할머니가 李대통령의 음식을 일일이 만들어 드리고, 또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일일이 확인해 봤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지시를 하면 우리들이 알아서 척척 했지요. 우리들에게 많이 맡겼어요. 소탈한 성격이어서 아랫사람들 하는 일에 별로 간섭을 하지 않았어요.


다만 두 분 내의와 양말은 항상 할머니께서 직접 손으로 세탁하셨어요. 언제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어요. 사람 차별하지 않고 일하는 우리들에게도 늘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하셨지요. 한국말을 배워서 우리들에게 간단한 명령어와 단어를 사용해 말씀하셨어요.

두 분은 아랫사람들과 격의없이 지내셨어요. 그야말로 인정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셨어요. 제가 허리가 아파 고생할 때 할머니께서 허리에 안티프라민을 바르고 손으로 맛사지해 주셨던 일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할머니는 명절 때 선물이 들어오면 모아두었다가 일하는 사람들 생일이 되면 나눠주셨어요』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이 나이가 많아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고 말하는 것은 와전된 얘기라고 전한다. 아침마다 자신이 직접 일간신문과 경제신문을 갖다 드렸고 신문을 꼭 읽었다는 것이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李起鵬씨의 아내 박마리아와 유일하게 친분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것도 잘못된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열 국방장관, 손원일 해군참모총장, 윤치영 내무장관의 부인들과도 친밀하게 지냈으며 정운수 의원 부인 편정희 여사, YWCA 총무였던 박에스더, 이화여대의 金活蘭 박사, 김신실·김영의 교수, 중앙대 설립자 임영신씨 등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경무대로 프란체스카 여사를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김활란 박사와 임영신씨는 李承晩 대통령 영결식 때 흰족도리를 썼을 정도로 친밀하게 지냈다.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이 하야하던 날 경무대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울어 울음바다를 이루었다고 일러주었다. 이화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기름이 없어서 총무처에 기름을 좀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쌀을 살 돈이 없어서 온실의 화초를 팔아서 쌀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께서 돈이 없어서 우리들에게 월급을 못 주실 거라는 걸 알았지만 두 분을 너무 존경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모두들 이화장까지 따라왔어요. 함께 생활하면서 두 분에게서 무엇 하나 어긋난 점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검소하고 소박하고 너무도 존경할 만한 분들이었지요』



대통령 내외가 하와이로 떠나자마자 경찰서에서 나와 물건에 딱지를 붙이고 물건을 실어 내갔다. 모두들 어쩔 줄 몰라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울었다고 한다. 짐을 실어 내가고 폐가처럼 되어버린 이화장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경무대 식구들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 후 정기적으로 찾아뵈었고 方在玉씨를 비롯해 경무대에서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프란체스카 여사 영결식 때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경무대 식구들은 아들 李仁秀씨 가족들과 내왕을 하고 있다.


『전 정치적인 건 잘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기운 옷을 입고 아끼느라 물건 하나 제대로 못 쓰는 모습은 모든 국민이 본받아야 돼요. 그때 경무대에서 일하던 사람들끼리 그랬어요. 저렇게 살려면 우리는 대통령 안한다고요. 높은 자리에서 그렇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方씨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상에서 새록새록 李대통령 내외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 ..... 먹는 것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


..... 경무대에서 모임에 초대되었다가 고픈 배를 안고 돌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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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李承晩 대통령은 「냉정한 사람」이라고 한다.


『일가 친척들을 경무대에 얼씬도 못하게 했습니다. 대통령의 甥姪(생질) 가운데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있어서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생질 남매에게 금족령을 내려서 경무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 지요. 그런 분이었으니 당신께서 不正(부정)을 할 리가 없지요. 4·19 때 李대통령이 스위스 은행에 몇백억을 예치해 놓았다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지 금까지 한 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금전적으로 깨끗한 분이었습니다』 李承晩 대통령이 수행원들에게 늘 당부한 말이 있었다고 한다.



『「냉수먹고 된똥 싸라. 밖에 나가서 경무대 석 자를 팔지 말라」고 하셨어요. 경무대를 등에 없고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말라는 의미였죠. 그 말씀을 자주 하셔서 항상 수행원들이 가슴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張勉(장면) 정권이 들어서서 강도 높은 조사를 했지만 경호원 가운데 부정과 연루된 사람이 없었습니다. 경호원이었던 곽영주씨가 사형을 당한 것은 4·19 때 발포 사건과 연루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정확한 얘기인지 알 수 없는 일이죠. 어느 해는 비서실 예산을 반납시켰을 정도로 경무대 사람들도 검소하게 지냈습니다』



李대통령은 항상 뭔가 골똘히 구상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金正旭씨가 바라본 李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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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때면 수행원들에게 와이셔츠를 하사하곤 했는데 그것도 모든 수행원들에게 다 주는 것이 아니라 몇몇에게만 주었다.


『경호원들에게 봉투에 돈을 넣어서 준다든가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 두 분이 워낙 검소하게 사셨기 때문에 남에게 선물을 줄 만한 물건이 없었어요. 저도 몇 번 와이셔츠를 받았는데 영광이었지요. 한번은 쓰시던 중 절모를 저에게 하사하셨습니다. 대통령의 중절모를 아버지께 갖다 드렸더니 몹시 기뻐하시더군요. 대통령께서 대신 나에게 충무로에 가서 중절모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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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晩 대통령의 유일한 취미는 낚시였다. 광나루 워커힐 아래 강가나 경복궁 內의 경회루에서 매주 토요일 낚시를 했다. 낚시 외에는 가끔 비원을 산책하면서 깊은 상념에 젖곤 하는 것이 취미생활의 전부였다.

『술도 마시지 않으셨어요. 오로지 모든 시간을 나라 살리는 일에만 투자했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 살 만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은 國運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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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발발 사흘 후 1차 선발대가 대구로 떠나고 다음날 2차 선발대가 대전 으로 갈 때 金正旭씨도 합류했다. 李대통령은 대구에서 대전으로 옮겨와서 『왜 나를 멀리 보내려 하느냐. 나는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하지 만 戰勢(전세)가 좋지 못해 수행원들이 서울로 가려는 李대통령을 충남도지사 관저에 모셨다.


『대전 모기가 대단합니다. 모두들 고생이 많았지요. 戰時여서 대통령 내외를 편하게 모실 수가 없었어요. 두 분께 따로 식사를 차려드리긴 했지만 먹는 것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李대통령은 대전에서 사흘 간 머무는 동안 수원으로 가서 미국 측과 회담을 하고 오기도 했다. 대전에서 다시 진해에 있는 대통령 별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밤이면 등화관제 때문에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 어두운데다 초행길이어서 수행원들이 대통령을 안전하게 모시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그날 밤 비까지 오고 있었다. 수행원들이 그곳 지리에 밝은 충남도지사에게 안내를 부탁했지만 자유당 소속이 아니었던 그는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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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원들에게 별로 말을 건네는 일이 없는 李承晩 대통령이 전쟁중에 질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맥아더가 왜놈들을 상륙시켜 北進하자고 하는데 자네들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물으셨어요. 모두들 묵묵부답이었지요. 그러자 「나는 왜놈이 한국에 발을 들여 놓으면 총부리를 왜놈들에게 대겠다. 왜놈은 우리 땅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대통령 일행은 仁川상륙 직후인 9·28 수복 때 서울로 돌아왔다가 1·4 후퇴 때 다시 피난을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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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말 듣지 않았다


金正旭씨는 프란체스카 여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만약 퍼스트 레이디가 한국 부인이었다면 경무대가 조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프란체스카 여사의 가족 가운데 아무도 한국에 살지 않아 외척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아예 없었습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너무나 검소하고 부지런한 분이었습니다. 계절마다 옷이 한 벌씩밖에 없었어요. 거의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경무대에서 모임에 초대되었다가 고픈 배를 안고 돌아가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경무대에 초대받았으니 점심을 주겠지 생각하고 왔던 분들이 간단한 다과만 대접받고 가면서 굶고 간다고 말하곤 했죠. 특히 과자를 프란체스카 여사가 직접 구워 대접하였는데 그 일로 초대받은 이들이 감격하곤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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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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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상어날개탕(야자열매 속을 파고 상어지느러미 수프로 채운 것), 뱀장어 캐비어, 코야(새끼돼지 통구이), 물고기 용정차(중국산 고급녹차)풍 철판구이, 비둘기 간장찜,
염소고기 샤슬리크(러시아식 바비큐), 라클레트(프랑스산 치즈를 가지와 감자 위에 얹은 것), 자라 찜….



일반인들이라면 들어본 적도 없을 산해진미(山海珍味)로 가득한 이 식단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저녁식사 차림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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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을 하다 보니 재료는 전세계에서 수입했다. 후지모토씨는 “중국 신장(新疆)성으로부터 멜론과 포도, 태국과 말레이시아로부터 두리안·파파야· 망고 등 열대과일, 체코에서 생맥주, 덴마크에서 돼지고기,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캐비어(철갑상어알), 일본에서 어류를 수입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에서도 한때 화제가 됐던 주석궁의 고급 술에 대해서도 그는 “주석궁에는 1만병의 술을 모아놓은 술 창고가 있다”고 밝혔다. 1990년대 초반에도 위스키, 코냑을 비롯, 일본 청주까지 망라된 술 창고가 있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즐겨 마시는 술은 위스키로는 ‘조니워커 스윙’, 코냑은 ‘헤네시XO’였다고 그는 전했다.



그러나, 후지모토씨는 이 화려한 식단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차림표에는 그날의 주 메뉴만 실릴 뿐이고, 실제 식탁에는 ‘반찬’으로 고기와 생선도 나오고 반찬의 양도 많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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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던 1993년에 김정일 가족이 유럽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내에서 먹을 도시락 준비를 위해 모스크바까지 날아가 도시락을 만들었다.


과일사러 싱가포르에,
철갑상어알을 사러 러시아와 이란에,
그리고 요리 재료 구입을 위해 중국, 유럽, 일본 등지를 돌아다니게 한다.


김정일의 전속요리사였던 후지모토씨가 2001년 4월 중순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일본으로 성게알 요리 재료를 사러 나갈 때는 김정일이 1만5000달러를 주었다고 한다.

해외에서 요리 재료를 사러 갈 때 재료비가 200만~300만 엔 정도 된다한다. 일본의 직장인들이 매달 30만엔 정도 받는다고 할 때 그 열배정도니....

1991년 다랑어를 사올 때는 400만 엔을 들인 적도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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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토는 「희대의 미식가」인 金正日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물론 金正日의 지시에 따라) 외국 출장을 부지런히 다녔다. 중국의 신강-위구르에서는 주로 멜론과 포도,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는 두리안과 망고 같은 과일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생맥주, 덴마크에서는 돼지고기,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철갑상어알, 일본에서는 생선류를 사 왔다.



金正日이 식사를 하다 말고 갑자기 『내일 당장 일본에 가서 쑥이 들어간 다이후쿠모치(大福: 팥이 든 둥근 떡, 한국에서 흔히 「모찌」라고 함)와 모든 종류의 일본 담배를 사 오라』는 바람에 1박2일 일정으로 北京을 거쳐 떡을 사 온 적도 있다.



金正日은 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의 관저에 있는 커다란 술 창고에는 全세계의 술 1만 병 정도가 저장돼 있었다. 1989~1991년 당시 金正日은 위스키는 「조니 워커 스윙」, 코냑은 「헤네시 XO」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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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석상에서는 놀랍게도 일본 군가를 부르는 일도 많았다. 그 중에는 내가 모르는 노래도 있었다. 보천보 전자악단은 전자 오르간을 연주했다. ‘라바울 고우타(小唄)’는 김정일이 좋아하는 곡이라 늘 함께 불렀다. … 항간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남한 노래를 부를 때도 많다.


나는 그때마다 이곳은 정말 별천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별천지에 내가 와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책 12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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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5 05: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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